우짜랴. 나도 이 말 밖엔 기억 안나는걸.
세련된 진보/세련되지 못한 정규직 어버이
노회찬은 첼로를 켜고, 이정희는 피아노를 치고, 조국은 낯선 밴드들의 노래까지 섭렵하는 문화 자산을 가지고 있다. 대중은 이들의 세련되고 부드러운 교양에서 날카롭고, 피폐하고, 가난하고, 궁상맞은 진보에 대한 선입견을 상당부분 거세한다.
서울대, 고대라는 화려한 학벌. 교수, 변호사, 국회의원이라는 더 화려한 직업, 진보가 이들만 같다면 그리 경계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부러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내 자식의 미래에 그 모습을 대입해 봤을 때, 거부감이 없거나 심지어 흡족하다면 사람들은 이를 수용하고 지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자동차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자기 자식들을 '공돌이'로라도 취업시키고자 하는 바람은 이기적이긴 하지만, 슬픈 현상이기도 하다.
불 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죽어도 내 자식은 기름밥 안 먹고 살게 하겠다는 일념이 그들이 고된 노동을 견디게 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노조에서 보고 배운 풍월은 있어 내 자식이 수구, 우익이 되는 건 싫었을 테니, 노회찬, 이정희, 조국, 심상정처럼 '일류대 나온 세련된 진보'가 아마 노조 물 먹은 조합원들이 자식에게 거는 가장 진보적인 기대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이미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는 걸 이들은 안다. 세계에서 가장 가방끈이 긴 진보정당이 진보신당이고 그 다음이 민주노동당이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도 있다.
진보의 지도자조차 일류대 출신들이 차지하는 학벌 세상에서, 부모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일류대 입학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지방도시 울산의 생산직 노동자 어버이들이 경쟁에서 이겨 제 자식을 상류층으로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이 이렇다는 걸 깨달은 이상, 진보고 나발이고 안정된 일자리라도 물려주고 싶은 게 못난 가장들의 마지막 부정이 되었다.
이기적인 노조는 나약한 가장들의 약한 고리를 영리하게도 파악한 것일 뿐, 이들을 그런 경제동물로 만든 건 근원적으로 노동자들의 탓은 아니다.
수 구세력의 비난은 제껴두더라도 세련되고 교양있는 진보 학자들의 비난이 나는 그래서 불편하다. 자신의 자식들이 외고, 자사고, 귀족대안학교를 다닌 것에 대해서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로 비껴갈 수 있는 논리와 능력을 갖춘 사람들.
정규직 노조의 세습 안에 대해 무한 이기주의로 비난하는 것이 진보의 기준인 양 되어버렸지만, 나는 적어도 자식 외고, 자사고, 귀족 대안학교 보낸 사람들은 입 다물었음 좋겠다.
세련되고 사회적 자산이 많은 진보와, 사회적 자산이라고는 힘 있는 정규직 노조의 조합원이라는 자산이 전부인 어버이들 모두 자신의 조건과 능력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자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러나 한 쪽은 자신의 행위를 방어할 세련된 지식과 논리를 갖추었고, 다른 한 쪽은 그런 논리를 갖추지 못했을 뿐이다.
그 러나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지언정, 가족 안에서는 존경받는 가장이 되는 길을 택한 정규직 어버이들이 되돌아 볼 것은, 그들의 대물림 때문에 다른 쪽에서는 비정규직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며, 다른 비정규직 가장들이 존경받는 아버지가 될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당신의 자녀들과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할 것이고, 지금 당신이 그러하듯 똑 같은 일을 하고도 더 적은 임금과 차별과 모욕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정규직 자녀를 증오하고 원망하고 시샘할 것이다.
당신의 자식들에게 그런 원망을 물려주고 싶은가?
차별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야 할 노동조합이, 노동자들 안의 차별과 갈등을 부추긴 점에서 이번 현대자동차 집행부의 단협안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세련되지 못한 정규직 어버이들의 이기적이고 나약한 마음에 대해서도 우리는 보듬어야 한다.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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