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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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 가시면 본인의 블로그가 어떻게 링크 되어 있는지 위와 같은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전에 티스토리로 연결되었던 것에 비해 조금 더 화려해지네요. ㅋㅋ

2009년 6월 24일 수요일

간만에 공대식 농담...

한 8년 전쯤에... 회사의 네트워크 시스템과 관련해서 3주를 뺑이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컴터는 10대밖엔 안되는데, 각각의 컴터들의 운영체제가 달랐던 겁니다. 한 대는 리눅스 머신, 또 하나는 맥, 7대는 Windows 98, 마지막 한 대는 NT.

 

같은 네트워크에 물리는 건 쉽슴다. 그냥 랜선 꽂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얘네들끼리 파일 공유를 시킬려고 하니 해골 심하게 아픕디다. 요즘 아이맥이야 버추어머신으로 XP를 돌릴 수 있고, 얘를 통해서 맥에 바로 파일을 집어넣을 수 있고, 리눅스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니까 별 고민 안하고 세팅하면 됩니다.

 

근데 그때는 리눅스 머신을 중심으로 세팅을 해야 됐죠. 문제는 맥과 NT가 사맛디 아니한 사태였는데... 그것도 어케저케 해결했었습니다.

 

이게 왜 이 밤에 떠오르냐면... 최근에 벌어지는 갈등들이... 최소한 네트워킹할 수 있는 기계들끼리의 충돌과 비슷하더라는거쥬.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치고 받고 싸우는 거랑 비슷한 수준의 갈등들이거든요. 문제는... TCP/IP로 대략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곳에서 이게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정작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분들은 모르스 부호를 사용하시는 분들이라는 건데 말이졉. 카드 펀칭 시스템을 이용하는 기계를 네트워크로 맥과 PC와 리눅스 머신을 한꺼번에 묶을 테크니션... 참 난감하겠다 싶습니다. 카드 펀칭 시스템이 트위터를 이야기하는 판인데... 이거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지들끼리 놀라고 하고, 최소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기계들끼리 연결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ps. 일부에선 모르스 부호가 아니라 '봉화'시스템이고, '카드펀칭 시스템'이 아니라 '병렬연결된 주판'이라고 태클 걸기도 하더군요. 쩝~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봉하마을 아방궁, 그리고 건축가 정기용

서거 이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1주일 동안... 퇴근하면서 항상 대한문을 찾았었습니다. 출근하면서 대한문을 돌아서 출근을 했고, 퇴근하면서 다시 대한문을 찾는... 조금 더 걷는 버릇을 들였죠. 그러다 집어들었던 한겨레신문을 보고... 통곡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들어왔던 날이 있었습니다(사실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그 '봉하 아방궁'의 설계자였던 정기용 선생의 기고문이 실려 있었던 겁니다.


한국 부자들의 건축 미학이라는게... '촌놈 겁주기'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곱게 포로 떠진 경찰이 1인 감방 앞에 매달린 그 충격적인 씬을 연상케 하는 마크를 당당하게 붙이고 있는 L모 건설이 대표적이죠. 고등학교 친구 중에 한 넘이 그 회사 기술연구소에 있어서 가끔 만나서 삐리리한 분위기 되면 바로 갈구기 시작하는게 그 '미학'입니다. S모도 마찬가지죠. 사회공헌사업을 위해 설립한 미술관의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에 기반했는데... 이거 '아집', '독선', '자의식 과잉' 등으로 해석되기 딱 좋습니다. 최악의 디자인을 사회공헌사업에 집어넣었다는 거. '교양의 깊이'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죠. 뭐 그룹 본사 디자인도 만만치 않긴 마찬가지입니다만. No. 1이라니.


이런 참담한 현실을 생각하면 정기용 선생은 참 독특한 경력을 쌓아온 분입니다.


이 분이 실행했던 프로젝트 중에... 1999년에 '무주공공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무주군수가 요청을 했던 것인데...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면사무소에 목욕탕이 들어가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유요? 그 마을의 주민들(할머니, 할아버지들이죠)을 주욱~ 인터뷰해보니... 목욕탕 한 번가러 먼 길을 다니는게 너무 불편하셨다는 겁니다.


사실 공공기관의 건축에 있어서 클라이언트는 그 단위의 책임자고, 그 사람의 취향이 반영되기 쉽죠. 그런데 건축가는 '진짜 주인'들의 의사를 물었고, 그 주인의 '위임'을 받아서 일하는 분은... 이걸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이 분의 철학, 직접 쓰신 <감응의 건축>이라는 책에 잘 나옵니다. 이 책의 주제도 사실은 '무주공공프로젝트'였구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이렇게 추천사를 썼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이 건축을 만들고 건축이 사람을 만든다. 우리의 농촌과 지역의 변화와 현실, 그것을 정기용이 건축에 담았다. 그러므로 무주에서 실천한 그의 건축적 비전과 시도는 바로 그곳에서의 사람들의 삶과 감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감응의 건축>이 척박하고 야비한 이 땅에 희망의 홀씨를 퍼뜨리기를 바란다.”


이런 분이 '아방궁'을 설계했을거 같습니까? 박연차에게 빌린 돈들 중에서 12억인가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빌렸던 겁니다. 한화 환산 잘만 하던 CJD가 달러를 고집했던 건 현 정부 들어 널뛰기 시작한 환율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하던 짓거리죠.


하긴... 그래도 '봉하 아방궁'이라고 우기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 분들, 이타적인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회의하시는 분들이니까... 혹시 주변에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인간관계에 대해 조금은 심각하게 고민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뒤통수 치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분들이니까요.


책에 걸어놓은 링크를 클릭하시면 정기용 선생의 프로필도 보실 수 있습니다.

 

참... '공화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도, 위의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번쯤 다시 고민하게 만드니까요. 정치적으로 좌냐... 우냐 상관없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습니다.

 

택두 없는 남한식 주제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어제 추모 공연에 대한 잡담...

아침에 빨래하고 낮에 용산갔다와서 시계를 보니 다섯시 반... 애매하더군요.

그때 출발해도 성공회 대학교까지 가면 거의 1시간여, 노란거 챙겨오라는데... 노란색 반팔 셔츠가 하나 있긴 하지만, 아무곳에나 앉을 수 있는 바지는 아직 마르지 않았고, 그렇다고 정장 바지 입자니... 전날 비왔던게 생각나더라구요. 그냥 방구석에서 인터넷 중계나 보자고 퍼졌습니다.

사람들과 전화하고 뭐 그러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7시반... 오마이뉴스에 들어갔더니, 덴장할... 중계 안한다네요. 여기 저기 뒤지다가 혹시 아프리카에선 하나 싶어 찾아갔더니... 커널뉴스와 사자후TV가 중계를 하더군요. 족발 한 접시 시켜 소주 두 병 마시면서 공연을 봤습니다.

노찾사의 공연, 유시민 전 장관의 발언... 뭐 그냥 그런갑다하고 봤습니다. 거꾸로 좀 깼던 건... 김씨였습니다. 맨날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봤던 사람이라 '아~ 가수였지'라는 생각이 들긴했었는데... 움... 가수 맞더군요. ^^

문자질 하면서 화장실 갔다온 사이. 퍼진 빡빡이 아저씨가 울먹거리면서 노랠 하더군요. DJ DOC인가...했는데, 체형이 좀 다른거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아놔... 마왕이더라구요. '가해자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먼저 반성한 다음에 저 10새끼들을 욕해야 한다'는 말... 그 즈음에 문자질 하다가 환타가 보낸 '알자지라 추산 100여명 사망' 소식에 이란 혁명세력끼리의 자리다툼으로 꼬라지 참 우습게 되고 있다는 생각, 뭐 그 외에도 몇 가지 생각이 동시에 돌다보니 어지럽데요. --;; 퍼져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씻지도 않은 상태에서 뉴스들을 보니... 참 가관입디다.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를 어떻게 손봐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분이 검찰총장이 되고, 신부님들은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가카의 대국민담화가 뭘지 짐작하게 되더군요.

그리곤 어제 공연과 관련된 뉴스들을 클릭했습니다. 콘트롤 패널에서 사운드를 뽑지 못해 계속 볼륨조절해가면서 공연을 봤었고, 아프리카의 실시간 중계라는 게 상당히 극악한 수준이다보니 무대를 제대로 못봤는데... 가수들이 무료로 출연했음에도 3천만원의 운영비가 필요했던 이유가 뭔지, 그리고 사람들마다 연대 노천극장에서 행사하면 중도에서 들린다/안들린다고 말이 갈라졌던 이유가 뭔지도 알겠더라구요. ㅋㅋ

고대 노래얼에 86학번인가 하는 아줌니 한 분이 있심다. 1학년때 처음 이 아줌니 목소리를 역시 극악한 상태에서 녹음된 걸 들었었는데... 짜릿하더군요. 나중에 이 양반에 대한 전설을 몇 가지 듣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스피커 어러 개를 해드셨다는 거였습니다. 기껏해봐야 기타 몇 대로 반주하던 시절이고, 제가 병역의 의무를 다 하고 복학할 즈음에야 신디사이저(라기 보단 키보드)를 노래패가 샀다고 자랑하던 시절입니다. 성량 빠방한 사람이 마이크에 그 힘을 불어넣으면 엠프가 처리하질 못해 스피커가 찢어졌던 거죠.

졸업할 무렵에야 대동제때 공연팀들이 10KW짜릴 쓸 수 있었던 정도니까 말해 뭣하겠습니까? 그 정도의 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이걸 전기차 불러서 하룻밤 집회를 하게 되면 그 당시 돈으로 몇 백만원이 날아갔었는데... 아침에 추모 공연과 관련된 기사들을 읽다보니... 4배는 되었겠더군요. 운영비용으로 3천만원이 날아간게... 거의 전기차 돌린 비용이겠더라구요.

80년대 중반 학번들이 암소리 안 들린다고 하고, 2000년대 학번들이 소리 들린다고 했던 이유. 경험했던 출력 차이가 10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슴다. 그러고 보니... 제가 공연을 마지막으로 본게...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이었더군요. 쩝~ 워낙 빈한한 문화생활을 한 탓도 좀 있겠구요. --;;

2009년 6월 17일 수요일

근데 각하는 이 말을 이해했을까요?

Okay? thank you very much ... well ...

 

It was only – let’s see -- I think seven hours ago or eight hours ago when I -- I have said before that I have deep concerns about the election. And I think that the world has deep concerns about the election. You’ve seen in Iran some initial reaction from the Supreme Leader that indicates he understands the Iranian people have deep concerns about the election.

 

Now, it’s not productive, given the history of U.S.-Iranian relations, to be seen as meddling -- the U.S. President meddling in Iranian elections. What I will repeat and what I said yesterday is that when I see violence directed at peaceful protestors, when I see peaceful dissent being suppressed, wherever that takes place, it is of concern to me and it’s of concern to the American people. That is not how governments should interact with their people.

 

And my hope is, is that the Iranian people will make the right steps in order for them to be able to express their voices, to express their aspirations. I do believe that something has happened in Iran where there is a questioning of the kinds of antagonistic postures toward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at have taken place in the past, and that there are people who want to see greater openness and greater debate and want to see greater democracy. How that plays out over the next several days and several weeks is something ultimately for the Iranian people to decide. But I stand strongly with the universal principle that people’s voices should be heard and not suppressed.

 

Okay? All right. Thank you, guys.

 

됐습니까? 대단히 감사합니다 ... 아, 근데 ...

 

시간이 딱 ... 가만 있자 ... 7시간 전인가 8시간 전에 ... 제가 말했듯이 전 선거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가 그 선거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셨다시피 이란에서 최고지도자의 첫 반응을 좀 보면 그건 이란 국민들이 선거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근데,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감안할 때 간섭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생산적인 일이 아니지요. 미국 대통령이 이란 선거에 간섭하는 것은요. 제가 재차 말씀드리고 싶고 또 어제도 말씀드렸던 건, 전 평화적인 시위자들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걸 볼 때, 평화적인 반대의사가 억압받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나건, 그건 제가 우려하는 것이며, 미국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방식은 정부가 자국 국민들과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또 제가 바라는 건, 이란 국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열망을 표현하기 위해 정당한 단계를 밟아가기를 바랍니다. 제가 정말 믿는 바는 이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거기서 과거에 벌어졌던 국제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적대적인 자세들에 대해 의문이 있다는 것이며, 또 더 큰 개방성과 더 큰 토론을 보기를 원하고 더 큰 민주주의를 보기를 원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향후 며칠, 몇주에 걸쳐 전개되가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이란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만, 제가 강력히 지지하는 보편적인 원칙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가슴이 미어지는 한 장의 사진.

 

노제를 보고 펑펑 울고 사무실로 들어와... 백원우 의원의 돌격 소식을 듣고 이 사진 좀 보라고 환타가 이야기했었을때... 또 펑펑 울었었죠...

 

재임 기간중에 참 많이도 놀려먹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포스는 어디 안간다는 걸 보여주는 영감님의 통곡은... 뭐라 말을 꺼내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감님의 발언을 두고... 참 말 많더군요. ㅎ.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전 독재보다는 '내란과 외환'의 혐의를 더 두고 있습니다만...

2009년 6월 13일 토요일

북한의 핵능력과 탄도탄 능력에 대한 잡담.

1/. 북한의 미사일 능력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의 준말이졉. 대륙간 탄도탄.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전후로 미국의 캐네디 대통령은 'missile gab'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군비경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소련이 가지고 있었던 실제 미사일 보유량은 미국 정부가 밝혔던 수량의 1/10 정도였고, 정밀 타격능력이 없어서 탄두의 위력을 극대화한 넘들이었습니다.
 

북한의 노동 미사일은 원래 스커드 미사일을 기초로 개발된 넘인데... 이게 문제가 좀 있습니다. 최고 고도에 올라가서 단 분리를 해서 탄두만 목표지역에 날리는 형태의 미사일이 아니라... 발사체 그대로 목표지역에 떨어지는 넘입니다. 고고도에서 지상으로 떨어질때 공기와의 마찰 때문에 정밀하게 날아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날아가다가 부러지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되는 넘 되겠습니다.


애초에 소련이 이 미사일을 개발했던 이유는...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대립하던 당시, 소련의 압도적인 기갑병력을 밀어넣기에 앞서 방공망을 비롯한 접경지역의 군사시설에 대한 집중포격을 미사일로 하겠다는... 전통적인 소련군의 교리(양으로 밀어붙인다는 짱구)로 만든 넘이기 때문에... 쏟아부어넣는 수준으로 쏘면 모를까... 한 두발로 승부 보는, 우리가 아는 미사일과는 좀 다른 넘이라구요. 장거리 대포알 정도로 짱구를 돌렸다는 거. 이거 기억해두셔야 합니다.


왜냐...


북한의 대포동 시리즈는 이 넘을 3~4개를 분해해서 이어붙인 것을 기본 구조로 합니다. 1단과 2단 분리는 됩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폭표지역에 날아가서 꽂히는 넘은 여전히 스커드 원형 정도 사이즈의 전봇대라는 거졉. 98년의 광명성 1호나, 지난번에 쐈던 거나... 최종 단분리에 실패해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데 실패했었습니다.
 

더 문제가 되는건... 이런 식의 미사일이 사거리를 이런 식으로 늘릴 경우, 설사 성층권까지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바로 가루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왜냐...성층권에서 지상으로 내려올때 가속되는 속도가 최소 마하 25거든요. 최대 마하 50까지 꽂히게 되는데... 거기서 발생되는 대기와의 마찰열 등을 견딜 방법이 없다는거죠.


무엇보다... 이게 장난감일 수 밖에 없는거. 대포동2 버전업판인 은하로켓이 올릴 수 있었던 위성체의 무게가 30kg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외나로도 우주기지에서 처음 올려보려고 하는게 100kg수준이라는 것. 그리고 스푸크니크를 날린 뒤 한참 뒤에야 소련이 ICBM을 만들 수 있었다는 거. 좀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당시 소련은 지금의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원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졉.


2/. 북한, 그리고 우리의 핵능력


1. 핵폭탄이란?


핵분열을 이용해 높은 파괴력을 가지는 핵폭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우라늄, 또 다른 하나는 플루토늄이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출발하는 지점은 우라늄235로부터 출발합니다. 자연계에 0.7% 내외로 존재하는 이 넘을 3~5% 수준으로 농축을 해야 핵발전소를 돌려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거든요. 물론 이거 안하고 우라늄을 그냥 농축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게 애로사항이 꽃 핍니다.


핵폭탄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대략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핵물질, 또 하나는 기폭장치, 마지막으로 운반체죠. 이거 하나씩 정리해드리겠습니다.


2. 핵물질의 확보, 농축!


폭탄급으로 농축하려면 거의 70% 수준으로 핵물질을 농축해야 합니다. 미국이 Manhattan Project를 1940년대에 가동하면서 농축하는 방법으로 썼던 것은 우라늄 235와 우라늄 238의 질량차이를 이용한 포집이었습니다. 흐흐...원자량 3 차이 나는 걸 이용해서 분리를 하려고 하면 엄청난 규모의 시설이 필요하죠. 미국이 전체 프로젝트에서 태웠던 돈은 무려 200억달러였습니다. 그때 돈으로 말이졉.


돈이 남아돌지 않는 다음에야 요즘은 이 방법 안 씁니다. 실제로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전술 핵폭탄의 대부분은 플루토늄을 원료로 쓰는 넘들이구요. 전략핵무기는 모두 수소폭탄이고 얘네들도 플루토늄 핵탄이 기폭장치로 작동됩니다. 암튼... 박통 시절에 우라늄 235를 가지고 돌릴려고 하면 얼마가 나오는가를 계산했던 것이 있는데, 70년대 당시 소요예산으로 잡았던 것이 9억달러에 시설 건설기간이 8년 나온다고 했었습니다. 바로 GG치고 플루토늄에 집중하죠.


이 이야기를 왜 하나면... 고농축우라늄계획(HEUP)를 북한이 가지고 있다고 카우보이 하나가 삽질하는 바람에 부시네의 초반부터 북한을 압박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ㅎ... 70년대에 9억달러면 요즘 얼마인지 아시나요? 북한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은 70%수준으로 농축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 5% 정도로 농축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북한에 우라늄 광산이 있으니 그걸로 뭐 좀 만들어보겠다는 이야기죠. 무기급이랑은 거리가 먼 이야기인데... 이걸 시비 걸었다죠. 킁~


더군다나... 북한의 기술력을 감안할때 기껏 선택할 수 있는 농축방식이 원심분리기를 이용하는 건데... 이건 대략 마하 2정도의 속도로 6개월간 돌려줘야 합니다. 석유 없어서 전투기의 가동률이 10% 내외인 북한에서 이런거 돌릴 연료는 또 어디서 얻을 수 있었을까요? 반면 우리의 경우엔 핵증기 레이저 분리시스템인 ALVIS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요.


그럼 플루토늄으로 다시 넘어가서... 플루토늄의 경우엔 사용후 핵연료봉을 통해 플루토늄 239를 상대적으로 손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화학처리로 농축을 할 수 있으니까요. 박정희 시절의 보고서에선 70년대 가치로 투자비 4200만 달러, 시설 건설기간을 6년 정도로 잡았다죠.


북한이 핵물질을 확보한 것도 영변 원자로 돌려서 얻은 겁니다. 약 40kg정도 뽑았을거라고 보고 있죠. 그런데... 흐흐... 우리나라는 1980년 이후에도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지속해온 지구상에 유일한 나라입니다. 가동중인 경수로가 12기, 중수로가 4기죠. 여기에 20%대의 고농축 우라늄을 태우는 30MW급 연구용 원자로를 돌리고 있는데, 이 아가씨는 일반 원자로보다 10배의 속도로 우라늄을 연소시키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막대한 양의 고농축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계 8위권의 원자력 강국이 우리잖아요?


3. 기폭장치


핵폭탄의 기본 구조는 고폭탄을 이용해 핵물질이 순식간에 핵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겁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고폭탄의 자체 생산, 그리고 정밀한 전자식 기폭스위치, 전파고도계, 탄두 통제회로 등입니다.


북한, 고폭탄 생산능력 있습니다. 하지만 정밀한 전자제품 생산과는 거리가 좀 멀죠.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서 터져졌던 넘은 폭탄 무게만 20톤에 달하던 넘입니다. 북한이 쪼물딱거리고 있는 딱총들도 대략 이 정도의 사이즈죠. 북한이 지금 가진 폭탄 배달 수단으로 보자면 500kg미만의 단위로 줄여야 어디든 넣어서 날릴 수가 있습니다. 뭐 미그21에다가 달고 난다고 하더라도. 수십톤에서 수백키로그램. 차이가 좀 많죠? 무엇보다 미사일통제체제에서 순항미사일은 사거리 제한을 두지 않고 탄두중량만 500kg미만으로 하고 있는 것도... 전술 핵탄 장착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구요.


그럼 이걸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 방법 밖엔 없습니다. 하나는 시뮬레이션. 또 하나는 핵실험. 컴터 이야길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PC이야기를 하는데 쩝~ 이걸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선 슈퍼컴퓨터를 수십대 돌려야 합니다. 울나라, 슈퍼컴퓨터 급으로 치는거이... 4여대 있죠. 북한은 이런거 반출입이 불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핵실험을 할 수 밖에 없는데... 핵 보유국가들이 좀 말이 되는 수준으로 줄이는데 10회 내외의 핵실험을 진행했던 걸로 가면... 북한 입장에서 또 하나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핵폭탄을 만들 핵물질이 오링난다는거죠. ㅋ


뭐 굳이 우긴다면 동일 스팩의 PC들을 병렬연결해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이거 하는 수준이면 벌써 북한에서 병렬연결과 관련된 수백개의 논문은 발표했을 겁니다. 그걸로 외화벌이에 나서야 할 북한이 이런 거 안한다는 이야기.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무엇보다... PC를 가지고 이런 시뮬레이션을 하려고 하면 몇 만대를 몇 년 돌려야 비슷한 결과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북한, 이거 돌릴 전기도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실전 배치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개구라인 것은 MD를 보면 압니다. 옆으로 날아가는 총알을 밑에서 위로 역시 총알을 쏴서 떨구겠다는 것과 비슷한 이 프로그램... 수천키로미터 단위의 오차가 생겨도 실험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언급됩니다. 어쩌면 미군의 입장에서 최대고도에 올라가면 바로 부서지기 시작할 것이 빤한 넘에다가 몇 방 쏴서 '지덜이 방어했다'고 하는게... 이번 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대의 사기가 될 겁니다.


우라늄을 무기급으로 농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한 북한이 자체 우라늄 광산을 가지고 경수로 발전을 위해 추출하겠다는 것을 두고... 3% 농축하는 것과 90% 농축하는 과정에 투입될 에너지가 직선함수일 것이라고 보는 기자들의 멍청함.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의 경거망동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도 또 하나 있습니다.


오늘 북한 발표에서 플루토늄 무기화를 지속하겠다고 선언했다는 겁니다. 무기급으로 농축해놓은 것을 저장할 방법까지도 가지 못했다는 것을 자인한거나 다름 없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어떤 또라이들은 핵주권 운운하는 이야길 하더군요. 전, 그 분들이 우리의 핵능력에 대해 쥐똥 만큼도 모른다는 것에 100원 겁니다. 설계도 있으면 북한의 중공업 능력으로도 이지스함을 뽑을 수 있다고 착각하시는 분들 아닙니까?

 

정국전환을 위해 꽤 애쓰는 건 알겠는데... 이런 식의 사기. 한 번 속지 두 번 속을꺼 같나요?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2009년 6월 12일. 대한문의 밤

회사 장비로 카메라를 샀습니다. 기종은 Pentax K20D, Sigma 17-70에 이런 저런 엑서서리들이 더 붙었죠. 들고 들어오면서, 그리고 기획서 쓰다가 머리가 안 돌아서 조금 전에 대한문 앞을 돌고 들어오며 찍은 몇 장의 사진이나 올립니다.

 

 

저녁 7시 즈음입니다. 현 정국에서 참 스님들이 독특한 위치를 소화하고 계시죠...

 

조금 전인 밤 10시 경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도 엄마 손 잡고 온 어린 아이들이 분향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민 추도사 낭독입니다.

오늘, 농성에 참여하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권영감님. 저는 이 할아버지도 참 복잡한 마음으로 쳐다보게 되는데... 현재로선 고생 많으시다는 말 밖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박종태님의 분향소.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적은 편이라고 봐야겠더군요...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블로거 시국선언을 갈음하야...

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고 모르시는 분들은 모르시지만, 저는 2006년부터 200년까지 인도와 네팔을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김현진씨가 제 가슴에 칼을 꽂았습니다만('인도 갔다온 토이남의 충분조건'이라뉘!!), 자아를 찾아서 갔던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일하러 갔던 거라... 그 동네에 가서 흔히들 고민한다는 '삶과 죽음'과 같은 주제들보단 조금 더 형이하학적인 주제들에 매달리고 있었죠.


2006년 4월, 점쟁이 불러서 국정 자문을 받던, 지 혼자 중세를 살던 왕이 결국 항복선언을 하고... 무려 10여년 동안 산에서 총으로 '중국식 소비에트'를 건설해온 마오바디(마오이스트 그룹)이 '선거를 통한 혁명'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 즈음에 네팔의 산골마을과 연계된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서 처음 들어갔고, 여권을 분실하기 전까지 꽤 많은 네팔 이민국의 스템프가 제 여권에 붙게 됩니다.


그 결과... 절대왕정이라는 참 올드한 정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민주공화정으로 바뀌는 가슴벅찬 순간을 현장에서 보게 되었죠.


그러나 그 가슴벅찬 과정에서도 조금은 황당한 상황들을 겪게 됩니다.


집 주인 아저씨가 자기 친구들을 불러서 술 한 잔 빨던 어느 날의 일이졉. 아마 겨울이 끝남을 축하하는 홀리 축제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네팔의 중년남 셋, 미국계 프렌차이즈 학교의 선생인 미국인 한 명, 저. 그렇게 구성된 자리였는데... 미국에 함 갔다왔다는 아저씨, 놀라운 것을 미국에서 봤다고 침을 튀기더군요.


네팔 중년남 1. "바엘 갔는데... 한 그룹이 술을 먹고 있는데, 한 명만 술이 아니라 소다수를 먹고 있더라고. 술 먹는 사람들을 집에 데불다 줘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야. 정말 선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구."


미국인: "뭐... 우리나라라고 해서 음주운전이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네팔 중년남 1. "아니... 그래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는 거잖아. 우린 그런 거 없거든"


미국인: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잠깐 머뭇거리다가) "어이~ 한국은 어때?"


저: "우린 대리운전 불러요"


모두: "우잉? 그게 뭐여?"


저: 10여분간 시스템에 대한 설명...


네팔 중년남1. "거봐. 선진국들은 그런 시스템이 다 있는거잖아"


저: (속으로) "우잉? 우리가 선진국이었어?"


이때... 말을 꺼내는 네팔 중년남2. "우리에게 민주주의라는 건 사치품 같어. 혹시 미국이 우릴 어떻게 해볼 방법은 없나요?"


미국인: (벙~ 찐 표정)


저: "아뉘... 국정 시스템 전환기엔 원래 혼란스러운건데..."


네팔 중년남2. "아냐... 아냐... 지금은 너무 아냐..."


이때 등장하는 주인집 아저씨: "어이~ 그런 골아픈 이야기 고만하고 술이나 더 먹지? 집에 좋은 술 하나 챙겨놨어. 어이~ 마누라~ 안주 좀 더 갖고와!"


뭐... 그렇게 해서 그 날, 술 좀 쎄게 펐슴다. 애인 사마께 눈치 좀 쎄게 먹었죠. --;;


그러고나서 또 며칠 뒤...


2007년 메이데이였을 겁니다. 네팔의 마오바디들이 네팔 상공회의소 회장을 털어서 전국 집회를 카트만두에서 가지던 날. 비자 연장하러 네팔 관광청에 가서 도장 기둘리면서 그 친구들 집회를 좀 봤었더랬습니다.


보다가... 삼엘 한 마디 내 뱉았죠.
 

"씨발..."
 

뭘 보고 그랬냐... 인민의 영웅이라는 마오바디의 대장, 프라찬다가 연단에 서자... 이 인간들 힌두식 예배인 '뿌자'한다고 쌩난리를 20분을 하더군요. 그것도 카스트 정통 방식에 따라서 말입니다. 브라만 사제가 앞에서 기도 하고 나서 빨간 거(빈디라고 하죠)를 이마에 바르니... 박수를 치더군요.


뭐가 연상되었기에 그런 말을 내뱉았냐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992년도인가 한국사회당 출범식을 하는데 국민의례를 해서 사람들 벙찌게 만들었던 거. 두 번째는 아마 참여정부 들어서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머시기 토론회에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에 기타당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앉았는데... 몽조리 서울대 선후배들이었다는거죠.


너네도 어렵겠다는 평가 역시 바로 나옵디다.


참고로... 이 아저씨들이 산에 올라갔던 이유, 그리고 마오이즘을 정치적 이념으로 선포한 이유가 전근대적인 토지 소유 때문이었는데요... 3모작이 가능한 남부 지역의 토지 80%는 8개 가문에 귀속되어 있고, 이 8개 가문에서 국민회의, 마오이스트, 공산당, 힌두근본주의 등등의 정당이 49개가 갈려나온 상태입니다.
 

정당 리더들이 브라만이 아니면 안 먹힌다는 것이 일빠고... 이게 8개 가족 출신이라는거죠. 더 골때리는건... 힌두 세계관으로 놓고보자면... 반군대장인 프라찬다 역시 '신'의 반열이라는 겁니다. 뭔가 하겠다고 발버둥을 쳤으니까 말이죠.


무엇보다... 이들이 산으로 올라갔던 이유가 '힌두교'와 떨궈 놓고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카스트'는 '힌두교도'들 내에서만 존재하는 계급체계이며... 이 계급체계를 엎어버리겠다고 했던 이들이... 전당대회 하면서 그 지랄을 하더라는 겁니다.


근데... 이게 '네팔이라는 나라가 정치적으로 미개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걸까요?


이 이야기를 자주가는 다음 카페에 올려놓으니 저만큼 밖으로 많이 돌아다녔던 모 방송국 PD 아저씨가 이런 댓글을 달아놓으셨더군요...


"재미있는 장면을 보셨군요. 흠 사실 불과 일이십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의 강력한 좌익 정당이나, 단체들이 거리 행진 할때 맑스나 레닌이 예수 자리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들고 하곤 했다는 얘길 회상해보면, '푸코'식으로 말해서 '모세혈관'에 스며든 문화적 습속에서 자유롭기가 생래적으로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국개론에 대해 심드렁했던 것도... 사실 이런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좀 뜬금없었지만 지난 2007년 대선과정에서 지만원씨가 '열사'가 되었던 것도 현 청와대 세입자의 족보를 뒤졌기 때문이죠. 이미 용도폐기된 구체제의 계급 관련된 이야기가 안 먹혔던 것도... 최소한 이 단계는 넘어섰었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고인이 되신 그 분의 고민처럼, 이 나라에 사실은 시민이 없었던 것이... 현 정국 상황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각성한 공화국의 시민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었다면... 상황이 이렇게 안 굴러가죠. 쪼잔한 인간들 가지고 흥분하는 것보다...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슴다.


이 글 쓰면서 생각났던 것들 중에 하나가... 현 정부 들어서 없어진 K본부의 '시사투나잇'의 한 꼭지였습니다.


수도권의 어느 아파트 단지. 아파트 단지 주변의 멍멍이 농장들이 개들을 도살할 때, 개들을 가스 버너로 그슬리는 통에 매연과 악취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대표의 선거에서 핵심 공약이 이 문제의 해결이었고, 주민대표들은 지속적으로 시 당국과 이 문제를 가지고 협의하고 있었었죠.


시 당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쏟아지는 민원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고, 인력 자체가 딸리니 그냥 저냥 미뤄놓고 있는 상태였는데... 기자들이 멍멍이 농장주들을 만나 이 이야기를 하니 농장주들 입에선 꽤나 황당한 이야기가 나왔던 겁니다.


"어... 그랬어요? 그거 안 해도 되는 공정인데... 그럼 저희들이 안 하도록 하죠"


수 년간, 갈등의 수위는 높아져가고 있었음에도 직접 대화는 단 한번도 없었던 겁니다. 직접적인 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훨씬 일찍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였다는거죠...


전... 이게 '정치'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 이거 할 겁니다. 마이크로 단위에서의 정치가 없다면,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정작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이들과 하나도 차이가 없는 겁니다. 이런 걸 하는 사람들이 '공화국의 시민'인거구요. 무엇보다... 고인이 꿈꿨던 세상 역시 이런 것이라는 거.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블로거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죠. 전 딱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헌법이 강간 당하는 지금 시점에서,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ps. 마오바디의 대장이었던 프라찬다는 제헌의회의 수상이 되었지만, 평화협정의 조건 중에 하나였던 '마오바디 반군의 정규군 편입'을 반대한 이 들과의 갈등 때문에 결국 사임합니다. 네팔의 군대는 사실 '라나'라는 한 가문의 사병이나 다름 없었거든요. 사병 집단에 이질적인 이들을 섞는다는 걸 참을 수 없었던 참모총장에 대한 해임이 대통령에 의해 무효화되었던 까닭에... 사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내각이 꾸려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22년전에 개헌을 했던 우리는 조금 더 달라야 하는 것 아닐까요?

3년상...

23일 이후,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를 바꿔봐야겠다고... 3년상 치르는 심정으로 진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첫 번째는... 사회적 갈등 해소, 리더십 등의 의미를 가지는 정치를 해야겠다는 것. 그래서 이번달 월급 받으면서 바로 진보신당 당원이 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KDI 국제경영대학원 진학입니다. 제 재정상황을 보자면... 아무리 빨라도 거의 내년 말까지는 빚 갚는 모드가 될 수 밖에 없으니 연간 학비가 1700만원이 넘어가는 대학원 진학은 무리죠. 하지만 돈을 모으고 준비하는 과정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서아시아에서 활동해야 하니, 인맥을 위해서라도 필요하고, 무식이 통통튀는 변학사를 보면서도 반성했던 부분이 많거든요.

 

일단... 이 정도 결의하고 살기로 했습니다. ㅋㅋ

2009년 6월 7일 일요일

저들의 2비트적 세계관

1. 한예종가지고 문화부가 꽤 쎄게 시비를 걸고 있더군요.


영수증 600만원 분실했다는 것 가지고 '횡령', 보직교수들과 학교운영방안에 대해 치킨집에서 수십회에 걸쳐 통닭 뜯고 맥주 마신 250여만원을 두고 '룸빵에서 썼다'고 하더군요. 뭐 시비걸겠다고 거는 넘들에게 뭐가 안 걸리겠습니까만...


가장 웃기는건 통섭교육과 이론과정에 대한 시비입니다. 우리 고전을 읽었을 턱이 없는 놈들이 예술가가 왜 이론을 공부하냐고 시비거는거쥬. 이건 돌대가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반면에 통섭교육에 대한 시비는 그냥 뚜껑 열리게 만들더군요.


MIT의 미디어랩이라는 곳이 있심다. 네그로폰데 영감이 85년에 동을 떠서 만든 곳이죠. 여기에서 공부하고 학생들의 전공들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교수들의 전공도 중구난방입니다. 미디어, 회화, 설치예술, 전산전공, 심지어는 인류학 등이 종횡으로 섞여 있심다.


왜 이 짓을 하냐... 애플의 각종 장비들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 독특한 디자인과 사용자 환경이 공돌이나 디자이너들만의 뇌에서 나왔을거 같으신가요? 예술가들과 기술자, 문인들의 종횡결합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이해시키기 위해 든 사례입니다만... 요즘 좀 나간다는 학교들치고 이런 학교들 아닌 곳이 없습니다.


사실 멀리갈 것도 없는게, 얼마전에 천재소녀에서 천재 유부녀로 바뀐 윤송이씨가 바로 이 미디어랩 출신임다. 이 언니의 해박한 동서양 고전에 대한 이해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아우르는 끝을 알 수 없는 교양이야 말로 이 아줌니 뇌의 동력이라는 거. 저 정도는 이해하는데, 학습능력 자체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인종들은 이걸 '좌파교육'이라고 합디다.


킁... 지덜이 이해하지 못하니까 좌파라는거쥬.


2. 윤이상 음악당에 대한 시비


땡감들이 우기는 것처럼 윤이상 선생이 조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근데 말이졉... 혹시 론리플래닛 한국판을 보신 적 있심까? 한국판이나 서울판이나 두께로 치면 네팔 트레킹 가이드 별책 정도 수준도 못됩니다.


하지만 윤이상 선생은 다르쥬. 더군다나 윤이상 음악당을 설계하기로 했던 사람은 다 쓰러져가던 스페인의 빌바오 시를 미술관 하나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어놓은 프랭크 게리입니다.


그런데... 지들의 신앙에 맞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더군요. 킁~ 더 깨는 건, 통영시는 퇴락하고 있는 어업도시라는 겁니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명성, 청정해역이라는 이름은 양식과정에서 너무 많은 오염물질을 만들어내... 그 밑이 썩어들어가고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지금도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도시 자체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라는거죠.


조또... 먹고 살거리 찾겠다고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적인 기능이 들어가 있는 서울공항을 무력화시키는 짓거릴 하면서, 정말 먹고 살꺼리들을 패대기치는 늬덜의 대가리는 정말 뭐가 들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지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좌빨인거 아닌가요?

2009년 6월 6일 토요일

정훈이

2002년 대선에서 정훈이님이 고인을 지지하는 플래시 에니메이션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무슨 상조회사 아니면 사채업자들의 광고만 나오는 케이블TV지만, 그때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광고는 J사의 3종 세트, 혹은 5종 세트들이었죠. 바지 세 벌에 몇만구천구백원... 그 플래시 에니메이션에서 그 광고를 보고 거의 자지러졌었답니다.

 

그리고... 이번 주 쎄네21을 지하철 가판대에서 보고... 문득 정훈이님은 어떤 카툰을 그렸을까...란 궁금증이 일더군요. 사서 보고... 지하철 안에서 쉼없이 울었습니다.

 

저 혼자 울기엔 조금 억울해... 여기에도 올려놓습니다.

 

영감님들, 왜 남의 밥그릇은 차고 XX이야?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가 있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 분의 작품 사진을 보면 모두가 '아~ 그 건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꽤 있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페인 빌바오 시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입니다.

 

이 분, 나이 들어서 이젠 일 못하겠다고, 딱 5개의 프로젝트만 더 할거라고 공언한 양반인데... 이런 양반이 혼쾌히 동의한... 한국내의 프로젝트가 '있을 뻔 했습니다.'

 

고 윤이상 선생의 이름을 딴 음악당을 통영에 짓는 것이었는데... 이게 왜 '있을 뻔'했냐면... 갈 때 다 되어가는 영감님들이 반대했다는게 이유랍니다. 헐...

 

통영... 미항으로만 사람들이 알지만... 사실 쇠락해가는 어업도시입니다. 양식장 밑으로 거대한 쓰레기들이 쌓여서 더 이상 청정해역이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잡히는 고기도 달라져 수익이 신통찮게 되었죠. 그런 도시에...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 하나 들어선다면... 순전히 그걸 보기 위해 서울에서 다섯시간을 달려갈 외국인들, 그 지랄하는 영감님네 단체 대가리 숫자의 몇 만배는 될겝니다.

 

그 영감태기들에게 윤이상 선생을 엮었던 '동백림사건'자체가 조작이라는 이야기 해봐야 입만 아플 일이죠.

 

다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가이드 북 두께가 다이어리 수준도 안되는데, 최소한 몇 페이지는 더 늘릴 수 있는 일을, 한 도시가 먹고살 수 있는 밥그릇을 차는 이유는 뭔지 좀 묻고 싶슴다. 영감들이 통영시민 먹여살릴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구 말이졉. 지들의 신앙 가지고 남의 밥그릇 걷어차고 다니는 거. 참... 그냥 봐주기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네요. 헐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