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고 모르시는 분들은 모르시지만, 저는 2006년부터 200년까지 인도와 네팔을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김현진씨가 제 가슴에 칼을 꽂았습니다만('인도 갔다온 토이남의 충분조건'이라뉘!!), 자아를 찾아서 갔던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일하러 갔던 거라... 그 동네에 가서 흔히들 고민한다는 '삶과 죽음'과 같은 주제들보단 조금 더 형이하학적인 주제들에 매달리고 있었죠.
2006년 4월, 점쟁이 불러서 국정 자문을 받던, 지 혼자 중세를 살던 왕이 결국 항복선언을 하고... 무려 10여년 동안 산에서 총으로 '중국식 소비에트'를 건설해온 마오바디(마오이스트 그룹)이 '선거를 통한 혁명'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 즈음에 네팔의 산골마을과 연계된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서 처음 들어갔고, 여권을 분실하기 전까지 꽤 많은 네팔 이민국의 스템프가 제 여권에 붙게 됩니다.
그 결과... 절대왕정이라는 참 올드한 정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민주공화정으로 바뀌는 가슴벅찬 순간을 현장에서 보게 되었죠.
그러나 그 가슴벅찬 과정에서도 조금은 황당한 상황들을 겪게 됩니다.
집 주인 아저씨가 자기 친구들을 불러서 술 한 잔 빨던 어느 날의 일이졉. 아마 겨울이 끝남을 축하하는 홀리 축제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네팔의 중년남 셋, 미국계 프렌차이즈 학교의 선생인 미국인 한 명, 저. 그렇게 구성된 자리였는데... 미국에 함 갔다왔다는 아저씨, 놀라운 것을 미국에서 봤다고 침을 튀기더군요.
네팔 중년남 1. "바엘 갔는데... 한 그룹이 술을 먹고 있는데, 한 명만 술이 아니라 소다수를 먹고 있더라고. 술 먹는 사람들을 집에 데불다 줘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야. 정말 선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구."
미국인: "뭐... 우리나라라고 해서 음주운전이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네팔 중년남 1. "아니... 그래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는 거잖아. 우린 그런 거 없거든"
미국인: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잠깐 머뭇거리다가) "어이~ 한국은 어때?"
저: "우린 대리운전 불러요"
모두: "우잉? 그게 뭐여?"
저: 10여분간 시스템에 대한 설명...
네팔 중년남1. "거봐. 선진국들은 그런 시스템이 다 있는거잖아"
저: (속으로) "우잉? 우리가 선진국이었어?"
이때... 말을 꺼내는 네팔 중년남2. "우리에게 민주주의라는 건 사치품 같어. 혹시 미국이 우릴 어떻게 해볼 방법은 없나요?"
미국인: (벙~ 찐 표정)
저: "아뉘... 국정 시스템 전환기엔 원래 혼란스러운건데..."
네팔 중년남2. "아냐... 아냐... 지금은 너무 아냐..."
이때 등장하는 주인집 아저씨: "어이~ 그런 골아픈 이야기 고만하고 술이나 더 먹지? 집에 좋은 술 하나 챙겨놨어. 어이~ 마누라~ 안주 좀 더 갖고와!"
뭐... 그렇게 해서 그 날, 술 좀 쎄게 펐슴다. 애인 사마께 눈치 좀 쎄게 먹었죠. --;;
그러고나서 또 며칠 뒤...
2007년 메이데이였을 겁니다. 네팔의 마오바디들이 네팔 상공회의소 회장을 털어서 전국 집회를 카트만두에서 가지던 날. 비자 연장하러 네팔 관광청에 가서 도장 기둘리면서 그 친구들 집회를 좀 봤었더랬습니다.
보다가... 삼엘 한 마디 내 뱉았죠.
"씨발..."
뭘 보고 그랬냐... 인민의 영웅이라는 마오바디의 대장, 프라찬다가 연단에 서자... 이 인간들 힌두식 예배인 '뿌자'한다고 쌩난리를 20분을 하더군요. 그것도 카스트 정통 방식에 따라서 말입니다. 브라만 사제가 앞에서 기도 하고 나서 빨간 거(빈디라고 하죠)를 이마에 바르니... 박수를 치더군요.
뭐가 연상되었기에 그런 말을 내뱉았냐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992년도인가 한국사회당 출범식을 하는데 국민의례를 해서 사람들 벙찌게 만들었던 거. 두 번째는 아마 참여정부 들어서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머시기 토론회에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에 기타당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앉았는데... 몽조리 서울대 선후배들이었다는거죠.
너네도 어렵겠다는 평가 역시 바로 나옵디다.
참고로... 이 아저씨들이 산에 올라갔던 이유, 그리고 마오이즘을 정치적 이념으로 선포한 이유가 전근대적인 토지 소유 때문이었는데요... 3모작이 가능한 남부 지역의 토지 80%는 8개 가문에 귀속되어 있고, 이 8개 가문에서 국민회의, 마오이스트, 공산당, 힌두근본주의 등등의 정당이 49개가 갈려나온 상태입니다.
정당 리더들이 브라만이 아니면 안 먹힌다는 것이 일빠고... 이게 8개 가족 출신이라는거죠. 더 골때리는건... 힌두 세계관으로 놓고보자면... 반군대장인 프라찬다 역시 '신'의 반열이라는 겁니다. 뭔가 하겠다고 발버둥을 쳤으니까 말이죠.
무엇보다... 이들이 산으로 올라갔던 이유가 '힌두교'와 떨궈 놓고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카스트'는 '힌두교도'들 내에서만 존재하는 계급체계이며... 이 계급체계를 엎어버리겠다고 했던 이들이... 전당대회 하면서 그 지랄을 하더라는 겁니다.
근데... 이게 '네팔이라는 나라가 정치적으로 미개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걸까요?
이 이야기를 자주가는 다음 카페에 올려놓으니 저만큼 밖으로 많이 돌아다녔던 모 방송국 PD 아저씨가 이런 댓글을 달아놓으셨더군요...
"재미있는 장면을 보셨군요. 흠 사실 불과 일이십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의 강력한 좌익 정당이나, 단체들이 거리 행진 할때 맑스나 레닌이 예수 자리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들고 하곤 했다는 얘길 회상해보면, '푸코'식으로 말해서 '모세혈관'에 스며든 문화적 습속에서 자유롭기가 생래적으로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국개론에 대해 심드렁했던 것도... 사실 이런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좀 뜬금없었지만 지난 2007년 대선과정에서 지만원씨가 '열사'가 되었던 것도 현 청와대 세입자의 족보를 뒤졌기 때문이죠. 이미 용도폐기된 구체제의 계급 관련된 이야기가 안 먹혔던 것도... 최소한 이 단계는 넘어섰었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고인이 되신 그 분의 고민처럼, 이 나라에 사실은 시민이 없었던 것이... 현 정국 상황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각성한 공화국의 시민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었다면... 상황이 이렇게 안 굴러가죠. 쪼잔한 인간들 가지고 흥분하는 것보다...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슴다.
이 글 쓰면서 생각났던 것들 중에 하나가... 현 정부 들어서 없어진 K본부의 '시사투나잇'의 한 꼭지였습니다.
수도권의 어느 아파트 단지. 아파트 단지 주변의 멍멍이 농장들이 개들을 도살할 때, 개들을 가스 버너로 그슬리는 통에 매연과 악취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대표의 선거에서 핵심 공약이 이 문제의 해결이었고, 주민대표들은 지속적으로 시 당국과 이 문제를 가지고 협의하고 있었었죠.
시 당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쏟아지는 민원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고, 인력 자체가 딸리니 그냥 저냥 미뤄놓고 있는 상태였는데... 기자들이 멍멍이 농장주들을 만나 이 이야기를 하니 농장주들 입에선 꽤나 황당한 이야기가 나왔던 겁니다.
"어... 그랬어요? 그거 안 해도 되는 공정인데... 그럼 저희들이 안 하도록 하죠"
수 년간, 갈등의 수위는 높아져가고 있었음에도 직접 대화는 단 한번도 없었던 겁니다. 직접적인 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훨씬 일찍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였다는거죠...
전... 이게 '정치'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 이거 할 겁니다. 마이크로 단위에서의 정치가 없다면,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정작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이들과 하나도 차이가 없는 겁니다. 이런 걸 하는 사람들이 '공화국의 시민'인거구요. 무엇보다... 고인이 꿈꿨던 세상 역시 이런 것이라는 거.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블로거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죠. 전 딱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헌법이 강간 당하는 지금 시점에서,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ps. 마오바디의 대장이었던 프라찬다는 제헌의회의 수상이 되었지만, 평화협정의 조건 중에 하나였던 '마오바디 반군의 정규군 편입'을 반대한 이 들과의 갈등 때문에 결국 사임합니다. 네팔의 군대는 사실 '라나'라는 한 가문의 사병이나 다름 없었거든요. 사병 집단에 이질적인 이들을 섞는다는 걸 참을 수 없었던 참모총장에 대한 해임이 대통령에 의해 무효화되었던 까닭에... 사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내각이 꾸려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22년전에 개헌을 했던 우리는 조금 더 달라야 하는 것 아닐까요?
trackback from: samuel의 생각
답글삭제블로거 시국선언을 갈음하야… 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고 모르시는 분들은 모르시지만, 저는 2006년부터 200년까지 인도와 네팔을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김현진씨가 제 가슴에 칼을 꽂았습니다만('인도 갔다온 토이남의 충분조건'이라뉘!!), 자아를 찾아서 갔던..
trackback from: 실타래가 블로거 시국선언에 동참합니다.
답글삭제안녕하세요, 실타래입니다. 실타래가 블로거 시국 선언에 함께 합니다. 어제 도아님께 저희 실타래가 블로거 시국 선언 실을 만들어서 배포해도 되겠냐고 제안을 드렸었는데 마침 흔쾌히 함께 하자고 하셔서, 바로 블로거 시국 선언 실을 만들었습니다. 모양은 이 모잉이구요, 선언자 앞에는 카운팅 숫자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예전 촛불/독도 때에는 고유 숫자 (내가 받아간 번호)를 표기하였지만, 도아님과 어울림님의 요청으로 고유 숫자가 아닌 이 실을 달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