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이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1주일 동안... 퇴근하면서 항상 대한문을 찾았었습니다. 출근하면서 대한문을 돌아서 출근을 했고, 퇴근하면서 다시 대한문을 찾는... 조금 더 걷는 버릇을 들였죠. 그러다 집어들었던 한겨레신문을 보고... 통곡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들어왔던 날이 있었습니다(사실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그 '봉하 아방궁'의 설계자였던 정기용 선생의 기고문이 실려 있었던 겁니다.
한국 부자들의 건축 미학이라는게... '촌놈 겁주기'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곱게 포로 떠진 경찰이 1인 감방 앞에 매달린 그 충격적인 씬을 연상케 하는 마크를 당당하게 붙이고 있는 L모 건설이 대표적이죠. 고등학교 친구 중에 한 넘이 그 회사 기술연구소에 있어서 가끔 만나서 삐리리한 분위기 되면 바로 갈구기 시작하는게 그 '미학'입니다. S모도 마찬가지죠. 사회공헌사업을 위해 설립한 미술관의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에 기반했는데... 이거 '아집', '독선', '자의식 과잉' 등으로 해석되기 딱 좋습니다. 최악의 디자인을 사회공헌사업에 집어넣었다는 거. '교양의 깊이'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죠. 뭐 그룹 본사 디자인도 만만치 않긴 마찬가지입니다만. No. 1이라니.
이런 참담한 현실을 생각하면 정기용 선생은 참 독특한 경력을 쌓아온 분입니다.
이 분이 실행했던 프로젝트 중에... 1999년에 '무주공공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무주군수가 요청을 했던 것인데...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면사무소에 목욕탕이 들어가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유요? 그 마을의 주민들(할머니, 할아버지들이죠)을 주욱~ 인터뷰해보니... 목욕탕 한 번가러 먼 길을 다니는게 너무 불편하셨다는 겁니다.
사실 공공기관의 건축에 있어서 클라이언트는 그 단위의 책임자고, 그 사람의 취향이 반영되기 쉽죠. 그런데 건축가는 '진짜 주인'들의 의사를 물었고, 그 주인의 '위임'을 받아서 일하는 분은... 이걸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이 분의 철학, 직접 쓰신 <감응의 건축>이라는 책에 잘 나옵니다. 이 책의 주제도 사실은 '무주공공프로젝트'였구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이렇게 추천사를 썼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이 건축을 만들고 건축이 사람을 만든다. 우리의 농촌과 지역의 변화와 현실, 그것을 정기용이 건축에 담았다. 그러므로 무주에서 실천한 그의 건축적 비전과 시도는 바로 그곳에서의 사람들의 삶과 감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감응의 건축>이 척박하고 야비한 이 땅에 희망의 홀씨를 퍼뜨리기를 바란다.”
이런 분이 '아방궁'을 설계했을거 같습니까? 박연차에게 빌린 돈들 중에서 12억인가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빌렸던 겁니다. 한화 환산 잘만 하던 CJD가 달러를 고집했던 건 현 정부 들어 널뛰기 시작한 환율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하던 짓거리죠.
하긴... 그래도 '봉하 아방궁'이라고 우기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 분들, 이타적인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회의하시는 분들이니까... 혹시 주변에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인간관계에 대해 조금은 심각하게 고민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뒤통수 치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분들이니까요.
책에 걸어놓은 링크를 클릭하시면 정기용 선생의 프로필도 보실 수 있습니다.
참... '공화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도, 위의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번쯤 다시 고민하게 만드니까요. 정치적으로 좌냐... 우냐 상관없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습니다.
택두 없는 남한식 주제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trackback from: samuel의 생각
답글삭제봉하마을 아방궁, 그리고 건축가 정기용 서거 이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1주일 동안… 퇴근하면서 항상 대한문을 찾았었습니다. 출근하면서 대한문을 돌아서 출근을 했고, 퇴근하면서 다시 대한문을 찾는… 조금 더 걷는 버릇을 들였죠. 그러다 집어들었던..
감응의 건축.. 이라 알겠습니다. 동네 공공도서관에 있으면 빌려봐야지 ㅋ
답글삭제@평원닷컴 - 2009/06/29 05:25
답글삭제없으면 꼭 희망도서 신청을 하십셔. ^^
맨날 신문서 아방궁이라 떠들길래 나도 글케 믿었습니다. 막상 봉하가서보니깐 사기당했구나!생각이 들더군여. 언론이란게 국민의 눈과 귀.입이되어야하는데 울나라 언론들은 왤케 일부빼곤 받아쓰기만 잘하는지 몰겠습니다. 저말구도 거기오신분들 여럿이..이게 무슨 아방궁인가 한탄을 하시더군여.
답글삭제@지나가다 - 2009/07/05 07:19
답글삭제집 구조가... 화장실 갈때와 식사할때 모두 밖으로 나와야 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정기용 선생님이 한탄했던 것도 자신이 설계한 집 구조 덕택에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다는 것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