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trauma

할아버지는 1945년에 필리핀 해역에서 전사하셨다. 당시 아버지 나이 6살. 할머니는 몰락한 향반의 맏딸이셨기에 억척스럽게 사시겠다고 나선 건 좋았으나... 아버지가 공부하는 건 그렇게도 싫어하셨었다. 책을 불살랐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

 

어머니는 시장에서 죽은 생선을 팔고 있는 걸 보고 친구에게 '놀랍다'는 형태로 말을 꺼냈다가 두고 두고 씹혔던 분. 지역 명문고를 거쳐 사범대를 거쳐 고등학교 가정 선생님으로 있다가 아버지랑 결혼하시면서 전업주부가 되셨다.

 

할머닌 물 한 방울 뭍히는걸 싫어하는 어머니와 사이 엄청 안 좋았고, 이것이 아마도 아버지 따라서 내가 초등학교의 거의 전 기간을 외국에서 보내게 되었던 이유들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부모의 정 같은 것 없이 성장했던 아버지는 첫 선을 본 자리에서 어머니와 결혼하셨지만... 어머님의 여왕 노릇은 할머니와의 분쟁 만큼이나 아버지에게도 스트레스를 줬었던 걸로 기억한다. 스페인에선 그나마 한국 사람들이라도 많았으니 아버지가 볶이는 경우가 적었지만, 멕시코는 사방 수백키로 안에 한국사람들이라곤 선원들 밖엔 없었던 터라... 많이도 볶였던 것 같다.

 

부모님은 사립학교에 집어넣는 걸로 자식들이 공부할 환경을 최대한 배려했다고 생각하셨지만, 현지의 빡센 사립학교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바닥을 기었던 내 성적이 결국 아버지의 스트레스 분출구가 되었었다.

 

정말 많이 맞았다.

 

가장 끔찍했던 기억은 몬순일때 집 밖으로 옷까지 벗겨져 쫓겨났던 기억이다. 그 모습, 반 친구들이 몇 명 봤었고, 꽤 오랫동안 놀림감까지 되어야 했다.

 

힘든 기억은 묻히기 마련. 그러나 최근에 얘네들이 다시 날로 올라오면서 나를 괴롭힌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