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3세계의 아이들
십 수년 동안 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친구 녀석 하나가 몇 년 전에 베네수엘라로 넘어갔던 적이 있었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 대해 공부하고 오겠다고 큰 소리 치고 넘어갔던 이 넘, 현지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 블로그에 상당히 충격적인 포스팅을 올렸다.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지역의 아이 하나가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배에 수술 자국이 하나 난 상태였다는 것이다. 뱃속에 있어야 할 장기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미국 TV 범죄 수사물에서 종종 나오는 현실을 현장에서 봤던 셈.
자신보다 돈 많은 집안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빈민가의 아이들이 현지 마피아에 의해 납치된 후, 장기를 도둑 맞는 사례, 워낙 많은데다… 이런 국가들에선 대체로 경찰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집계되지도 못한다. 경찰 자신도 부양해야 할 가족은 많지만 월급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에, ‘돈’이 생기지 않는 일에 더군다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은 생까야하는 법.
이 비슷한 사례는 그 다음 해에 필자가 인도에서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던 중에도 접할 수 있었다. 인도의 한 지역에서 40구가 넘는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경찰 수사결과 희생자들은 모두 인근 지역에서 유괴된 아이들이었고, 대부분 강간당한 후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었다. 일부 유골은 신체의 일부가 사라진 상태여서 장기밀매 조직이 연관되었다는 추측까지 나왔지만, 수사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미궁에 빠진 상태다.
사실 인도에서 아동 유괴는 꽤 오래된 문제기 때문에 오토릭샤 한 대에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타고 등 하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낯설지 않다. 같은 동네 사는 사람들이 릭샤 운전수와 계약을 하고 한꺼번에 등하교 시키는 시스템이다. 애 열을 한꺼번에 유괴할 방법은 없을 테니까.
일가족 나들이. 이 동력에 애들이 10명씩 타고 다닌다고 상상만 해보시면 된다.
그러나 처참함의 으뜸으로 치면 뭐니 뭐니 해도 아프리카 대륙이다.
우간다의 AIDS 엄마와 그 아들. 사진 박정남
시계가 없어서 정확한 복용 시간을 맞출 수 없어 AIDS약을 못 먹는 사람들, AIDS보다 고통 때문에 말라리아나 이질을 더 무서워하는 사람들. 기아와 질병에서 끝나지 않고 내전이 일어난 지역에선 약에 취한 상태로 무차별적 살상을 벌이는 도구인 소년병으로 끌려가거나 반군의 성노예로 끌려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끔찍한 동네들의 이야기는 뭐하러 이렇게 오래 하냐고?
인구비례로 놓고 보면 인도에서 사라지는 아이들과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은 똑같다. 인도 대륙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은 1만 명 수준. 반면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이 1년에 수 백이다. 인구가 27배가 많은 나라라는 걸 감안하면 인구비례로 비슷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수준이… 이렇다.
2. 안산 9세 여아 등교길 강간상해 사건과 관련된 논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던 이유. ‘나영이 사건’ 혹은 ‘조두순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뭐 인터넷에서 이슈가 된 것으로 치면 거의 한 달이 지난 사건이다. 필자가 감기 몸살로 드러눕는 바람에 지금에서야 이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되짚어봐야 할 부분들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본다.
당시 1차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것은 ‘형량’의 문제였다.
근데 ‘형량’이라고 하는 것은 ‘잡혔을 때’의 이야기로, 사후 약방문이다. 뭐, 이미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뒷북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12년 형이 짧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동 성폭력범들이 왜 아이들을 목표물로 하는지 아는가? 잡히기도 쉽지 않고, 잡혀서도 빠져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조두순의 경우엔 나영이가 진술한 인상착의와 너무 달라서 재판부가 정말 많은 고민을 하다가 판사의 눈이 본지 기자들만큼 예리해 잡아낼 수 있었던 경우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범들은 이만큼 악질적인 놈들이다. 조두순만 하더라도 재판부를 거의 농락했었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것, 자기 안경을 쓰지 않은 것 같다는 사실을 잡아낼 수 있었던 재판부 덕택에 집어넣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 포인트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양형이 문제가 되어야 할까?
더군다나 대한민국 형법체계에서 유기징역은 15년이 한계다. 물론 예외가 있어서 가중처벌을 하게 될 경우엔 25년까지다. 문제는 폐륜범죄인 존속살인의 경우에도 사형, 무기징역 혹은 7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 선고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물론 솔직한 필자의 심정은 깍두기 오빠들이 빵에서 정의의 사자 노릇을 좀 해줬으면…이다. 하지만 현행 형법 체계 자체에서 재판부는 일단 잡아넣는데 ‘성공’했고, 양형 기준에 맞춰 판결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3. 연대와 집단적 책임
반복하지만 성 범죄자들이 아이를 범행의 대상으로 삼는 가장 큰 이유는 ‘잡기 어렵고, 잡아도 유죄를 확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재발방지를 생각한다면 예방과 사법처리 프로세스의 두 가지 방향에서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첫 번째는 예방.
기본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l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등하굣길 안전 도우미 조직화 지원.
l 등하교시 비슷한 주소지의 학생들이 3인 이상 그룹으로 같이 이동하도록 규정.
l 성추행&폭행 등에 대한 교육강화
l 등하교 시간대에 지역 경찰의 주요 통학로 순찰 강화.
아무리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가 아니라 셋 이상 모여 다니고, 동네 어른이 인솔을 하고 다니는데 덤벼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순찰차가 계속 돌고 있는 상태에서 태연하게 범죄를 저지를 넘도 많지 않고.
두 번째로 사법처리 프로세스의 개선
l 경찰청 산하에 유괴 및 안전사고, 성추행&폭행 등을 전담하는 ‘아동전담반’ 구성
l 아동 실종 신고 즉시 Amber 경고 발령 광역 및 지구대로 연계
l 성폭행 사건의 경우 아동 심리학자가 수사 및 치료과정에 반드시 동참하도록 법제화
조두순만 하더라도 염색한 상태에서 나영이를 덮쳤고, 법정에선 안경을 쓰고 나와 인상착의를 최대한 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재판부를 농락할 뻔 했었다. 더 영리한 놈이라면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더불어 그런 참변을 겪은 피해자로부터 제대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상당한 기술을 요한다.
정말 문제는… 한국사회는 이 조차 구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회라는 점이다.
서울만 하더라도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가구의 숫자가 매년 20%에 달한다. 40대 초반인 필자의 어린 시절처럼 한 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고 동네 어른들과 관계를 가지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역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아니, 주택의 소유형태로 지역 내에서 섬이 만들어지고 있는 판국이라는 걸 감안하면 지역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한 덩어리로 취급하질 않는 판이다. 참고 기사
아파트가 자기 집이냐 임대냐에 따라 출입하는 출구 자체가 다른 판국에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같이 책임지는 아름다운 행위가 가능이나 할까?
아니, 사실 있는 집 아이들은 이런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아주 낮다. 아빠나 엄마 차를 타고 등교하고, 수업 끝나자 마자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학원 버스를 타고 가서 학원에서 계속 뺑뺑이 돌다가 자정 무렵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뭔 수로 덤비겠는가?
현실적으로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 혼자서 등하교 하는 아이들은 중산층 이하 가정의 아이들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더 암담한 것은, 저소득층으로 갈 수록 자신의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의 여유가 더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집단 등하교의 형태로 움직일 아이들은 중산층 이하 아이들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고, 이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스스로 보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별도의 인력을 지원을 해야 이게 가능한 그림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 포인트에서 또 암담해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 라는 질문.
한겨레21 추석합본호의 특집은 대한민국의 중도, 니는 누구냐였다. 기사를 읽다가 허탈했던 것은 무려 70.3%가 저소득층의 의료비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당신의 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올리는 걸 반대하더라는 항목이었다.
기껏해봐야 천원 단위의 인상으로도 훨씬 더 나은 삶을 제시할 수 있음에도 반대하는 판국에 지네들의 아이들이 노출될 가능성이 낮은 범죄를 예방하고 또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비용을 지출하겠는가?
필자, 인터넷에서 조두순의 처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너거덜, 혹시 이 문제에 대해 필자와 비슷한 결론을 미리 내놨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재판부의 고민과 관련된 내용은 깡그리 무시되고, 범행현장이 교회라는 사실에서 범인이 목사였다는 소문으로 확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생뚱 맞은 사람의 얼굴이 범인의 얼굴이라고 공개되었던 일련의 과정… 이런 예방 시스템 구축에 백원 한 푼 쓰기 싫은 늬들의 욕망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을 하는 이유. 예방과 사법처리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가 진보정당들에선 이미 오래 전에 나왔는데두 이번 재 보선에서 배낀 놈이 아무도 없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 가카 지지율 50%를 타고 여당이 압승하는 형태로 달리고 있다고 하는데도… 통합 야당의 공통 공약으로 이 이야기가 안 나오더라. 이슈가 아닌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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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아동권리협약의 제15조는 다음과 같다.
제 15 조
1. 당사국은 아동에게 결사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2. 이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는 법률에 따라 부과되고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 공공질서, 공중보건, 윤리, 보호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의 보호를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과하여져서는 안 된다.
작년 5월. 이 조약은 가카네 공권력에 의해 휴지통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보다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권리(생존권), 아이들이 모든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을 권리(보호권), 모든 아이들이 같은 교육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권리(발달권), 아이들의 자신과 관련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참여권)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 범인을 손가락질하는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가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나라란 얼라들이랑 여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말한다.
그런데, 조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와 학원 뺑뺑이 돌고, 아이들이 성범죄자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방치시키는 거이… 살기 좋은 나라인가?
가카 임기가 1200여일 남은 지금.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재보선이 벌어지는 지금, 다시 한번쯤 이 문제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RSS에 등록해놓은 덕에 이 글을 볼 수 있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답글삭제@노정태 - 2009/10/16 23:13
답글삭제훔... 노정태님두 이 오지에 들어오시는 줄은 몰랐네요;;;
trackback from: 안산 9세여아 등교길 강간상해 사건 단상들
답글삭제!@#… 최근 널리 거론되는 안산 9세여아 등교길 강간상해 사건에 대한 중구난방 단상들. 실감나게 분노하는 것은 그런 것을 더 잘하시는 수많은 다른 분들에게 맡기고… 늘상 그렇듯 좀 더 ‘기술적인’ 부분들에 주목, 더 발전시킬만한 발아점들만 한 보따리.
!@#… 토막1. 범인이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를 판정받은 것 자체는 그다지 이견이 없는 것이, 범행의 잔인성으로...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Anonymous - 2009/10/18 12:05
답글삭제지방경기가 최악이라는 이야기만 반복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IMF가 찾아왔었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삶의 형태들이 남미식의 완전한 분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놓치는 동안 이런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 암담한 것은 시즌 1보다 시즌2가 항상 훨씬 더 잔혹하다는... --;;
시스템 구축에 백원 한 푼 쓰기 싫은 욕망이라는 말에 아주 공감하고 있습니다.
답글삭제꼭 이 사건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슈에도 비슷하죠.
다음 아고라 청원을 까는 건 아니지만, 단지 거기서 손가락 깔딱 거려 클릭질 하는 것'만'으로 "나는 '모든' 시민의 의무를 다하는 중도적 진보성향의 사람이라능..."하고 있는 모습에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
물론 정말 사정이 안되고, 여유가 안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암만 그렇다고 하더라도..-_-;;
@hungrian - 2009/10/20 08:26
답글삭제시스템이 자신의 삶을 개선시킨다는 것 자체를 별로 믿고 싶어하지 않는거죠. 어떤 면에서 보자면... 4대강과 관련된 비판들이 그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 시스템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그대로 고착화시키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잠깐은 하게 됩니다.
딸 키우는 입장에서 참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읽으며 치를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몇 년후에 학교를 다니게 될 아이를 생각하면 참 막막하더군요. 그렇다고 매일 아침 학교 앞까지 모셔다가, 하교시간 맞춰 데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답글삭제@감은빛 - 2009/10/26 02:00
답글삭제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지역 단위가 공동으로 아이들을 책임지는 구조... 입니다만, 문제는 항상 '철학'에 있죠. 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이 대한민국 사회이기에... 아마도 대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참 형이상학적일 겁니다.
아니... 아이들에게 어렸을때부터 사교육을 그렇게 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조기유학 보내는 분들이... 그게 일종의 인권유린이라는 걸 알고 하고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