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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0일 목요일

티벳, 최소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

티벳 사람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건 델리의 티벳 난민촌(델리 메트로의 북쪽 끝에서 내려 쬐끔 걸어가면 됩니다), 다르질링의 티벳 망명촌... 정도입니다. 카트만두에서 제 등짝에 신발자국을 작년에 안겨주신 분께선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와 악수까지했다고 합니다만....

하지만 티벳에서의 독립운동을 방송으로 보고 있으면 속이 좀 많이 불편해집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고, 이번의 시위는 89년 천안문과 달리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을 사진 한 장 없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갈 것 같으니까요. 서방의 몇몇 스포츠 스타들은 개인적으로 북경올림픽 불참을 고려하고 있다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올림픽 보이콧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입장은 좀 달라야 하는게 아닌가합니다. 뭐 올림픽에 참여를 하든, 말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얘네들이 티벳에서 뭔 짓을 했었는가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티벳을 두고 중국, 인도, 대만이 벌이는 쌈박질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이후 북한에서 뭔 일이 벌어질 것인지 예측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밖엔 안됩니다.

솔직히 북쪽의 아저씨들이 쌩양아라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습니다만, 그 쌩양아가 더 북쪽의 두 나라 놈들에 비해선 대화의 여지가 더 많다고 보는 입장이니 말이졉.

티벳과 중국 한족의 마찰은 그 기원이 꽤 오래된 겁니다. 7~9세기엔 통일왕국을 이루고 독립된 세력으로 존재했었지만.. 그 이후엔 당나라의 영향권으로 들어갔고, 13~14세기엔 아예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1750년 청나라 건륭제땐 보호령이 되었었죠. 1912년 청나라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인 중화민국 아저씨들이 1948년 강제로 쫓겨나기 전까지 기어들어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대장정(이라고 쓰고, 대도망이라고 읽습니다. ^^;;)때 그 근처에서 좀 얼쩡거리며 붉그죽죽한 친구들을 좀 만들어놨다고... 이전의 중국 왕조들이 했던 행각들을 그대로 따라하죠.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중국군 정규군을 투입해 티벳을 무력으로 점령해버립니다... 뭐 무력점령까진 그렇다치자구요. 문젠 거의 20년을 중국 대륙이 미쳐 돌아가던 문화대혁명(이라고 쓰고 문화대동란이라고 읽습니다. ^^;;) 시기에... 이 씹숑들이 벌였던 엽기행각들은 일제가 우리에게 했던 것이 차라리 신사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지랄들이었습니다.

뭔 짓을 했냐구요? 3700여개가 넘던 티벳 곰빠(사원)들이 13개만 남고 몽땅 다 돌부스러기가 됩니다. 수 세기를 버텨왔던 곰빠를 뽀겐 것만 하더라도 탈레반 저리가라할 수준의 엽기행각인데... 얘네들 그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비구들과 비구니들을 잡아다가 공개된 자리에서 성행위를 강요하죠. 그걸 거부하면 죽였고, 해도 했다는 이유로 창피를 줬죠. 이거 진두지휘한 분이 나중에 남겼던 명언이 '흑묘백묘'죠. 티벳에서 벌어졌던 참상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 포스트를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슷한 엽기행각들은 대륙의 서쪽에서만 진행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코민테른의 결정으로 1국 1당 원칙이 만들어지자 소련에서 활동하던 조선 사회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으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자들은 중국 공산당에 입당을 하죠. 그리고 소수민족 정책을 만들어내야 할 정도로 이들의 활동은 만만찮았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에선 일명 '러시아 화', 중국에선 '한족화'라는 결정들이 내려지면서 비명에 간 사회주의자들이 한 둘이 아니죠.

뭐... 연변자치주의 초대 주장이었던 주덕해의 경우엔 쩌우언라이가 그렇게 아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병에 걸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었으니까요.

암튼... 이 지역을 두고 인도와 중국, 그리고 대만이 벌이는 신경전들도 장난이 아닙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제가 2006년 여름에 더위를 피해 다르질링으로 도망갔었을때 찍었던 겁니다. 구멍난 공을 차고 있는 꼬마 뒤로 보이는 버스의 앞 부분만 나와 있는데... 저 버스, 대만이 보낸 의료지원차량입니다. 대만애들이 돈이 넘쳐서 그런거냐...면 그게 아니구요. 티벳은 지네들 땅이니까 지네들 국민으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그런 겁니다.

자기네 지역이라고 우기는 정도들이 좀 당황스러운게... 중국이 지네들 나와바리라고 주장하는 영역엔 엄연한 독립국가인 부탄도 들어가버립니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지를 정한 것도 따지고보면 인도와 중국이 서로 총질을 한 번했던(이라지만 인도가 일방적으로 밀렸던) 전력이 있어서죠.

근데... 힘 없으면 좆뙌다는거야 뭐 그렇게 세삼스러울 부분은 아닙니다만... 이 엽기 짜장면들에게 우리가 재래식 군사력으로 밀린다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핵 딱총 몇발 가지고 우리와의 군사력 격차를 좁히겠다고 아우성인 위쪽 동네가 문제지... 고강도 무력분쟁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미친 짓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의 빠워는 우리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뭐 지네들 포털에서 시비거는 짜장면들을 비웃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잡것들이 티벳에 어떻게 하는지를 똑똑히 보면서... 저게 한반도의 북쪽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꼭 기억해두셨으면 합니다.

2008년 3월 10일 월요일

중국 진출 기업들이 직면하는 숨겨진 문제.

공산당은 나쁜 것, 그냥 적... 뭐 대충 그런 식으로 보시는 분들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앞장서서 외자유치에 나서고, 사회주의라기 보단 자본주의적인 형태로 자신들의 사회체제를 바꿔가는 것을 보고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마냥 뿌뜻해 하시더군요.

글쎄요... 한 사회가 어떤 이념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사실 그 사회가 어떤 정치세력을 선택했느냐의 문제로 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시각들은 나이브 하기 그지 없다고 봅니당. 사실 인과관계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구요.

이런 이념이라는 선글라스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절, 그러니까... YS때까지도 안기부가 기획을 하고 전경련이 돈 대줘서 전국의 대학 학생회 간부들을 중국 관광을 시켜줬던 적이 있었습니다. 목적은 좀 빤했죠. "너희들이 말하는 사회주의가 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걸 계속 이야기할래?" 뭐... 대충 이런거였거든요.

물론 학생운동이 맛이 가면서 부턴 이런 호사도 동시에 없어지긴 했었습니다만... 중국현대사를 살펴보다보면... 이들이 왜 홍군을 지지했는가... 그리고 흑묘백묘를 이야기한 덩 샤오핑의 집권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전혀 다른 해답들을 얻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마오쩌뚱을 붉은 중국을 세운 사람 정도로만 알고들 있으며 덩 샤오핑과 같은 테크노크라트들과 적대적인 관계만 유지했다고 이해하죠. 하지만 마오가 자기 아들까지 희생시키며 한국전쟁에 이른바 '의용군'을 파병(국가적으론 파병이었지만, 자발적으로 간 거니까 자신들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다...는 눈 가리고 아웅했죠)해야 했던 이유들을 살펴보면... 이 나라의 지도부가 경제발전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름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것을 하고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내는데 성공하자마자 중국 지도부가 직면하게 되었던 상황은 기근이 들어 수십만명이 굶어죽는 사태였습니다. 어서 사회주의적 경제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똥끝이 타들어오는 상황이었던거죠. 그래서 스탈린에게 사회주의적 경제 개발을 위한 지도원들을 파견해달라고 하는데... 스탈린 입장에서 보자면 '농민이 주도하는 중국식 사회주의'라는게 아무래도 짝퉁 같아 보이는 겁니다.

소련에서 여하간의 지원을 하기 시작했던 것두 마오가 자신의 아들까지 잃고, 수십 수백만명의 중국인들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나서부터였죠.

그것도 제대로 기술전수 같은 걸 해줬냐...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와서 중국의 현실을 비웃기에 바빴었죠. 중소국경갈등 등을 '공산주의자에겐 조국이 없다'는 공산당 선언이 실제와 사맛디 아니한 사례 정도로 해석하는 걸 외우라고 가르치던 우리의 윤리교과서와는 달리, 실제 갈등의 원인은 이 과정에서 나름 대국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중국인들의 자존심이 시궁창에 처박혔기 때문이었죠...

문화대혁명(이라고 쓰고 문화대동란이라고 읽습니다. ^^;;)조차도 사실 마오가 나름 경제 발전을 위해 추진했던 대약진 운동이 대재앙으로 끝나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고... 그 권력을 다시 찾기 위해 벌였던 엽기 행각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면... 덩 샤오핑의 흑묘백묘 그 훨씬 이전부터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경제 성장이라는 것은 핵심적인 문제였습니다.

이경숙 전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미국 유학을 갈때 숙명여대 교직원들이 김포공항까지 가서 환송을 해줬다죠. 그런 압박감을 가지고 미국에 유학갔는데 오린쥐 하나 슈퍼에서 사질 못했으니 얼마나 갑갑하셨겠습니까? 70년대 말 유럽의 캠퍼스를 접수하기 시작했던 중국산 유학생들은 한 대학의 교직원들이 아니라 '당'에서 보내줬던 이들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적으로 공부하고... 또 조국으로 돌아가 뭘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 짐작가는 바가 없으신가요? 나이브한 서방 시각으론 "쟤네들 망명하면 우짠다냐?"라고 물었을때 이들은 "우린 인구가 많아서 몇 명 토껴도 상관없어"라고 대답했지만... 정작 가서 공부하는 이들은 '조국 경제를 새롭게 건설하기 위한 중대한 사명을 안고' 공부하러 갔던 것이었으니... 망명은 이들의 안중에도 없었죠. 중국 공산당도 이걸 잘 알았구요.

이런 성과들이 실제 쬐끔씩 시작했던 것이 1980년대였고... 그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북경 올림픽이 있죠. 그들이 좋아하는 숫자 8이 연달아 세 번 반복되는 날로 개막식을 잡았다죠... 그들에게 이번 올림픽은 그냥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라기 보단... 그 절치부심의 세월동안 자신들이 쌓아올린 것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는 초특급 이벤틉니다.

얘네들의 이런 사정에 대해 우린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중국 진출 중소기업들, 대부분이 저임금을 바라보고 들어갔었죠. 뭐 최근엔 "10억에게 신발을 팔아도 그게 어딘데?"라는 분들이 들어가셨습니다만... 자신들이 내심 경멸해 마지 않는 까오리팡즈(원랜 고구려인, 고려인을 칭하는 말인데 우리가 가끔 짱께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용도로 쓰임다)들이 그동안 깝쭉거렸던 것을 pay back하겠다고 하고 있지 않을꺼 같으셨나요?

사실 이런 정황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비했어야 하는 분들이 불과 10여년 전까지 '사회주의 조또 아니라는거 좀 배우고 와라'라고 대학생들 관광 보냈던 분들이었는데... 뭐 우짜겠습니까. 남의 나라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페널티를 중국에 공장 차린 중소기업인들이 가장 먼저 받는 것일 뿐이죠.

명색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그리고 극심한 빈부격차로 최악의 경우엔 흙을 먹고 살던 이들의 지지가 있어서 집권했던 이들이... 내수 경제의 크기를 키우겠다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경로였을 겁니다. 싼 인건비가 결코 싸지 않은 인건비가 되고, 더불어 최근의 원자재 난까지 겹쳐지게 되니... 현지에 진출한 중소기업들로선, 더군다나 이익율을 대기업들에 가져다 바쳐야 하는 것과 다름 없었던 최근의 상황들을 보면... 견디기 어려웠겠죠.

그럼... 이게 언제 모든 기업들로 연결되어 갈까요? 아마... 그게 2MB 정부의 명운을 가르는 시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