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3일 월요일

대한민국호의 미래가 암담한 이유...


얼마전에 모니터를 하나 샀습니다. 꽤 오래된 랩탑을 계속 쓰고 있긴 합니다만, 지금 제가 쓰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문서와 간단한 2D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수준의 작업이 대부분인 까닭에... 아무래도 작업대가 좀 큰게 필요했거든요... PC조립해 쓸때만 하더라도 비디오 카드는 항상 Matrox를 선호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죠. 가끔 하는 게임이라는게 <대항해시대4>나 <Capitalism>, <스타크레프트>정도니 3D처리속도가 빠른 넘은 필요없었죠.

 

LG Flatron을 사가지고 와서 잘 쓰다가... 요 며칠전에 선배네 기획사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눈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쓰고 있던 모니터가 EIZO였거든요... 요즘은 20.1인치 와이드 모니터라고 하더라도 20만원 초중반에서 구입할 수 있죠? 그런데 이 EIZO라는 넘은 21인치짜리가 1백만원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LCD의 반응속도 따지시는 분들이라면 이 넘의 반응속도에 콧방귀만 나올 겁니다. 16ms로 20만원대의 제품군이 5ms라는걸 감안하면 심히 구리니까요.

 

그런데도 114~116만원을 하는 넘을 쓰는 이유.

 

이 모니터로 인쇄용 그래픽 작업을 하면 출력물이 똑같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빛의 3원색이 RGB임에 반해 색의 4원색은 CMYK인 까닭에 아무리 그래픽 툴에서 CMYK로 작업을 해도 출력물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것도 모르고 인쇄디자인 한다는 분들이 작업을 해서 엉뚱한 색을 쓰는 책들을 '상품'이라고 내놓는 만행을 저질렀었죠. 그런 까닭에 돈 좀 있다는 중산층 애 엄마들이 아이들 책을 특정 상품만 선호하는 일도 벌어졌었습니다. 몇년 전부턴 이런 택두 없는 일은 과거지사가 되긴 했지만요.

 

물론 인쇄쪽 업체들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매킨토시인 까닭에 이거 살 여유 없는 곳에선 애플 시네마도 많이 사용합니다. 이 놈도 가격이 많이 착해진게 5~60만원대죠. 재미있는 사실은 얘네들은 LG-필립스 공장에서 나오는 LCD를 사용하는 놈들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감은 애플쪽이 훨씬 더 좋습니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물건임에도 어떻게 가격차이가 그렇게 날 수 있게 만드는지...

 

뭐 국내 기업이 만드는 것들 중에 비싼 넘이 없냐면 그건 아닙니다. 삼성의 싱크마스터 제품군들 중에서도 100만원대에 근접하거나 훌쩍 뛰어넘는 넘들이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얘네들이 비싼건 이게 LCD가 아니라 LED이기 때문이지 색감 자체로 놓고보자면 선택지가 아닙니다. 이넘들, 더 아닌건 전기도 만만찮게 많이 잡아먹는 넘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소해보이는 겁니다만... 결국은 이 차이가 우리와 선진국의 차이가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장금이가 절대미각의 보유자라면 비싼 모니터를 만드는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절대색감을 가진 넘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런 색감의 차이는 3살 이후엔 성장하지 않습니다. EU에서 <다빈치 프로젝트>라는 걸 만들고,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는 지나치게 칙칙하거나 원색을 사용하지 않도록 '규제'하는 이유도... 어렸을때부터 이 색감의 차이를 키워주기 위해 하는거죠.

 

하지만... 그렇게도 선진국이 되길 열망하면서도 사람들이 달려가는 길은 이와는 정 반대잖아요?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미술과 음악, 체육이 시간표상으로만 존재한게 꽤 되었죠? 미감 자체를 키우지 못했다보니 어설프기 짝이 없는 청계천이나 서울숲 같은 거에도 환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색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모니터에, 원색은 기가막히게 찾아서 쓰는 플래시 광고들이 주리줄창 떠다니는 인터넷만 보고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과... 국가연합적 차원에서 아이들의 눈에 신경을 쓰는 나라의 차이는 궁극의 기술력 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더군요.

 

궁극의 기술력 차이라는 건... 설계도가 있어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잖아요?

 

그럼에도... 우리나라 정치 리더들의 머릿속에선 그게 아니더군요. 지난 4월 총선에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패배했던 이방오 의원이 몇년전 국정감사에서 깨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여러 밀리터리 매니아들 뒤로 자빠지게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현대 아산이 대북사업을 계속하는 댓가로 현대중공업에서 만들고 있던 KD-3 세종대왕함의 설계도를 건내줬다는 첩보가 있다고 사발을 푸셨거든요. 이지스함이 이지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레이다와 방어미사일을 연동시키는 군용 소프트웨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데... 이 분들은 설계도만 있으면 다 만들 수 있다고 뇌의 뒤쪽에서 굳게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망언이었던 겁니다. 변변한 조선소는 물론이고 전기가 없어서 난리인 동네에서 함선 본체를 찍어내는 것두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아마 내일이면 거의 결과가 확정될 2008년 미국대선에서... 오바마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할때... 대체 에너지 개발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당할 수 있고,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 그러니까 풍력, 태양력, 그리고 다음세대의 바이오 연료들에 다음 10년 동안 15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인데, 이는 신산업과, 새로운 5백만 개의 일자리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일자리들은 보수가 좋을 것이고, 아웃소싱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요기서 "아웃소싱이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말을 좀 집중해보죠. 기업이 '아웃소싱'을 하는 이유는 그게 싸게 먹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웃소싱이 불가능한 업종'이라는게 무슨 뜻일까요? 뭐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그건 '자기들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낼 거라는거죠. 이게 국가경쟁력이 아닌가요? '남들이 쫓아갈 수 없는 기술적인 갭'을 만드는 것 말입니다...

 

이 갭은 흔히 말하는 '문화'이기도 하고, '비전'이기도 합니다. 더 골때리는 건... 이런 류는 자기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면 결코 만들어지지도 않는 것들이죠. 잔업과 철야가 많은 나라에선 이런 형태의 혁신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일종의 양질전화 현상 같은 것이 생산현장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거든요. 지속적인 생산능력 개선작업이 어느 순간에 혁신을 일으키는 사례들은... 이를 체험적으로 아는 CEO들이 살린 회사들의 사례들만 봐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내용이구요.

 

뭐... 문화로 가면 더 암담하죠. 지금은 영국여왕과 자산규모가 비슷한 롤링여사가 <Harry Potter>시리즈의 1권을 썼을때... 그녀는 정부의 생활보조금은 받는 싱글맘이었습니다. 이 싱글맘은 당장의 생계가 갑갑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보조금 받아가면서 소설을 썼었죠. 이거... 현 정부의 시각으로 말씀드리자면 '일하지 않고 정부의 복지수당을 받아먹는 기생충' 정도로 표현해도 뭐... 그리 틀린 건 아닐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의 문화 시장은 너무 좁아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죠. 그런데 말이졉... 이웃한 북경반점과 일본초밥집은 몇년전부터 전세계의 모든 지식들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국가 사업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권 단위로 팔리는 책들은 대부분 다 번역된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도 '시장이 작다'라는 이야길 할 수 있을까요?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딴짓한다는게 70년대까지의 개발독재 시절에 가졌던 생각과 달리... 실제로 어느 정도 배부르고 등 따스한 국민소득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선 그 당시에 경멸했던 그게 국가 경쟁력이 되기 시작합니다. 최근들어 대기업 CEO들을 중심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그 양반들이 이제서야 이 사실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뭐 전경련에서 교과서 수정요구를 하는 황당한 행태를 벌이는 상황이기도 하니 갈길이 존니 멀긴 합니다만...

 

작업대 넓어졌다고 좋아하다가 선배네가서 눈 버리고 나서... 이 생각이 계속 들더라구요. 털어버리기 위해선 글로 한번쯤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 올립니다...

댓글 2개: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뭐 이제 이 나라 이 정부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놀라지 않을 만큼 단련되어가고 있습니다만... 국제중과 교과서 사태를 바라보면서, 과연 이런 황당무계한 나라에서 미치지 않고 아이를 제정신으로 키울 수 있을지, 아이가 제정신으로 자라날지, 생각할수록 암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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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삭 - 2008/11/05 00:46
    대체로 위기라고 하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는데... 우리의 경우엔 위기라면 사람들이 그냥 패닉에 빠지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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