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1일 월요일

이거 뭐삼...2

그는 또 "(양극화가 심화되는) 그 이유는 양극화는 시대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며, 또 복지지출 증대가 국내소비 기반의 취약점을 가져왔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나라 재정운용 정책은 민간의 압박에 의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장관은 "대만은 법인세가 17.5%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감세가 답이라는 것.

기사원문

양극화가 '트렌드'라고라...???

2008년 8월 10일 일요일

이거 뭐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의전하는 넘들이 암 생각 없는 건가... 아니면 고도의 안티가 있는 걸까... 고게 궁금할 나름입니다. 뭐 저 분의 정신상태론 뭐 그렇게 심각하게 현상들을 관찰하는 분이 아닌다보니 말이졉.

2008년 8월 9일 토요일

칼럼니스트 김현진의 단식을 보면서...

혹시 이 동영상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OECD장관회의가 벌어지던 지난 6월 18일 코엑스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선글라스를 쓴 이 처자 말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회사원이면서도 시사IN과 메거진T에 달콤 쌉싸름한, 때로는 아주 매운 글들을 쓰던 김현진씨였더군요. 어떤 글들이냐구요? 메거진T의 이 글과 시사IN의 이 글의 필자입니다. 어줍잖은 글빨과 학벌 가지고 뭐 해보겠다고 일만 벌이고 다니는 변희재랑은 급수가 아주 다른 필자죠.

그런 그녀가... 기륭전자 노조원들의 단식이 60일째로 접어드는 요즘... 90시간이 넘도록 동조단식중이라고 합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든 요즘, 위기라는 말은 쉽게들 하더군요. 물론 그에 따른 처방도 많이들 나오고 있구요.

하지만... 정연주 사장 시절에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받았던 독립PD협회장이 정사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집회에 나오고, 대학 들어갔을때 우리과 1대 졸업생으로 조교를 하고 있었던 선배가, 그것도 강남에서 수학학원 원장님으로 나름 끝발 날리고 있는 선배가 진보신당 강남 지구당 깃발을 들고 기륭전자 지지농성장에 나타나는 걸 보면서...

그게 위기네, 끝났네...라는 말이 뭔 말인가 싶습니다. 거꾸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절실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더군요.

90시간 넘도록 단식중인 김현진씨가 폴 포츠의 스타탄생을 두고 썼던 글의 마지막에 있는 이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 꿈에는 돈이 든다.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소중한 것을 쏟아 부으면서도 절대 놓지 못하는 징글징글한 것이 진짜 꿈이다. 그래도 못내, 끝끝내 고래 심줄처럼 질긴 꿈을 놓지 못하고 생에 질질 끌려가듯 살아가면서도 한쪽 손에는 기어코 가슴 뛰는 일 하나 꿈에도 잊지 못하는 사랑처럼 꽉 잡고 있는 그대, 그것 절대 놓지 말기를. 빚을 지면서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꿈이 있다면, 그게 진짜니까."

박태환의 400미터 금메달을 보고 든 잡생각

이 두 개의 글이 먼저 생각나더군요. 두 글 모두 2006년에 읽어서 그런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1. 2006년 3월 30일 한겨레21 이윤기의 종이비행기 47
 
"야구를 보면서 딴 생각을 하다" (로그인하셔야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가 시작되던 해, 나는 베트남에 파견됐다. 보충병 시절, 지휘부는 야구 좀 해본 ‘놈’ 나오라고 했다. 나가서 테스트 받고 선수가 되었다. 미군과의 야구 시합이 있다고 했다. 가까운 비행장에서 미군 팀과 붙었다. 15 대 2쯤으로 참패했던 것 같다. 꽤 크고 힘이 좋았던 나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짐승의 체력을 지닌 놈들’,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뒤에 다른 미군 부대와 축구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야구와 비슷한 점수 차로 또 참패했던 것 같다. 나도 선수로 뛰기는 했지만, 시합 내내 공은 두어 번밖에 못 차봤던 것 같다. 미군 부대의 ‘매스홀’에 들어가 처음 보았던 놀라운 광경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마실 것과 어마어마하게 기름진 음식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거대한 뷔페 식당이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가 꽁보리밥 한 덩어리, 아니면 국수 한 그릇 먹고 부추밭에서 야구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미국 아이들은 고기 먹고 잔디밭에서 야구 연습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날 처음으로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금국에 밥 말아먹고 있을 동안 미군들은 매일 그렇게 먹고 마시고 있었을 것이 아닌가. 짐승 같은 체력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 것이지 싶었다.
...
 
1990년대 들면서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운동장에서, 골프장에서, 축구장에서 서양의 ‘떡대’들을 올라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코끝이 찡해질 만큼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 자랑스럽다는 느낌 뒤로, 코끝이 찡해질 만큼 서글프다는 느낌 또한 묻어든다. 덩치나 체력에서 서양인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우리 선수들의 당당한 모습 뒤로, 북한 사람들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다. 나는 북한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TV 화면에 비치는 북한 사람들은 우리와 견줘 왜소하고 깡마른 것처럼 보인다. 외양도 조금 다른 것 같다. 흡사 미군과 야구 시합하던, 35년 전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지금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사람들의 외양이 같아지기까지 또 35년쯤 걸릴 것이라는 어림짐작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야구 보면서 딴생각을 한 것이다."
 
2. 2006년 6월 21일 사커월드 게시판 pubpub님의 글
 
 
"옛날엔 사우디한테 지면 맨날 '오일 달러'이야기 했다. 모깃불 피워놓고 대청마루에서 모기장을 쳐 놓고 수박 먹으며 사우디에게 한골 두골 먹는 대표팀 경기를 본 사람들은 안다. 우리는 애당초 이정도 수준, 즉 세계에서 범용하게 싸울수 있는 수준이 되기위해 안달을 했다고. 이제야 겨우 '한국애들은 전자제품 잘 만들어' 라는 소리를 듣는 수준이지만, 예전엔 '한국 제품은 싸구려' 라는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었다고.
 
조국? 대한민국? 웃기네, 학교다닐때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는 '반공'이었고 '새마을 운동'이었다. 밤에는 통행금지가 있었고, 경찰이 치마 짧다고 자 들고 다니면서 여자들을 연행하던 이상한 나라였다. 메이지 유신이 일본을 살린 구국의 결의 였다며 '유신체제'를 선포하는 대통령이 있던 이상한 나라였다.
 
우리는 세계에서 말하는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해 투쟁했다. 맨날 한국이랑붙으면 승점 먹고들어가던 나라가 아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한테 3점 정도 먹고 들어가던 '깔아주는 나라"가 아니다. 젠장, 이정도면 어때?"
 
구기종목에선 상당히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갔음에도... 아직까지 우린 육상과 같이 '절대적인 spec'이 경기력의 차이를 가르는 종목에선 힘을 쓰는 편이 못됩니다. 1930년대에 수영에서 강자로 잠시 등극했었던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동양인의 체형에 맞는다'는 평영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습니다.
 
뭐... 양넘들이 훨씬 더 크니 '물을 긁을 수 있는 팔 길이'라는 사이즈에서 절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자유형이나 접영, 배영은 밀릴 수 밖에 없는게 'spec의 차이'니 말입니다.
 
물론 투자한 만큼의 성과들을 얻어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시설 투자도 제대로 하지 않는 옆 나라는 그 일본인들이 말하는 '동양인들의 한계'를 낼름 넘어버리고 있는거죠. 그것도 자기들보다 인구수는 절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옆나라인 중국과 비교하면 1/25 정도의 인구를 가진 나라가 말이죠... 아마 그래서 2007년에 박태환이 금메달을 딸때 그렇게 흥분했던 거 같습니다.

작년에 네팔에 있을때 그 소식을 일본의 위성방송을 통해 봤었거든요. 한겨레21의 신윤동욱기자도 아마 같은 방송을 봤던 것 같은데... 그 친구들 엄청나게 흥분하더군요. '스바라시'가 몇 번이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과를 냈던 종목들, 그리고 그 팀의 지도자들이 conventional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2002년 월드컵의 히딩크 감독이 대표적인 사례죠. 16강이었던 이탈리아와의 한판승부에서 1:0으로 지고 있는 상태에서 수비수를 모두 빼버리고 공격수를 투입했던 용병술... 이런거 아무나 생각하는거 아니잖아요. 도대체 92년부터 02년까지의 10여년동안 부상당하지도 않은 홍명보를 빼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었냔 말이죠...

2006년 WBC의 김인식 감독도... 단기전의 특성에 철저하게 집중한 형태로 팀을 꾸렸고, 그에 맞는 작전들을 구사했었죠. 특히 8강전에서 마지막에 일본과 붙었던 경기는 Classic한 야구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죠.

이번에 박태환의 스승인 노민상 감독도 비슷하더군요. 고등학교 중퇴인 이 양반, 스포츠 생리학에 빠져들었고 이를 근거로 한 훈련계획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학교졸업장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세상... 아마 이번에 공정택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지지했던 강남 학부모님들이 원하는 세상이죠.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섬을 벗어난 세상에선 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박태환과 노민상 감독 콤비가 보여준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눈에 들어왔던 건... 외국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들을 뒤집어서 제한적인 정보들만을 국민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권력을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강남 졸부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명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의 기본적인 구조는 '중소기업'의 그것이지 '선단을 이루는 재벌'형태가 아니라구요. 그걸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도전을 하기 보다는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는 이들이 그들이졉.

경기 하나를 두고 지나치게 정치과잉의 글이란 생각도 쬐끔은 합니다만... '보통국가'에서 다시 '이상한 나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저만 가지진 않으실거라는 생각에... 글적여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50미터부터 앞서나가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들었던 생각 중에 하나는... 저게 사람이냐 어뢰냐... 였습니다. ㅋㅋ

2008년 8월 8일 금요일

2008년 올림픽, 88올림픽

중국, 한 나라가 총력을 다 해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째 많이 보던 것들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말입니다.

아는 사람이 구치소에 들어가 있고, 카페 회원들이 연행되고, 선배는 경찰에게 두드려맞은 현실이 겹쳐지는 이유가... 말입니다. 그때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2008년 8월 4일 월요일

진보신당의 전진 논쟁을 보고...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아주 잠깐 K리그로 붙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붉은악마의 'CU@K리그'라는 마지막 메스게임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아는 입장에선 참 눈물나는 일이었죠.

그런데... 이게 몇 달을 안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몇 달을 안 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많은 분들은 K리그가 재미없어서, 혹은 거품이 빠졌던 것... 뭐 이런 식으로 바라보시겠지만... 그 근처에서 꽤나 얼쩡거렸던 입장에서 보자면 '새로운 축구팬'의 등장에 대해 바라기만 했지 정작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 것이라는 것에 대해선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 '올드팬'들에게 그 책임의 대부분은 간다고 봅니다.

당시 축구장을 새로 찾았던 사람들은 2002년 월드컵에서의 그 환희를 계속 맛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죠. 당근 당시 월드컵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들의 팬들이 가장 많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즌권이 그렇게 싸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의외로 K리그도 꽤나 박진감 넘치는 게임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올드팬들은 특정 선수들이 공만 잡아도 '꺄악~'하면서 뒤로 넘어가는 여중고생팬들의 등장이 아주 눈꼴 시었나보더라구요. 빠순이들이 축구장에도 등장했다는 투덜거림들이 참 많이도 들려오더군요. 그리고 이 친구들은 물론이고... 시즌권이 그렇게 싸다는 사실을 처음 안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떤 팀을 응원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거야... 일러무삼한 이야기죠.

그런데...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특정 팀이 아니라 특정 선수에 열광하는 것이 불편했던 분들... 사고한번 대빵으로 치게 됩니다. 제 기억으론 지금 북패라고 불리는 팀의 서포터스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분이 술 이빠이 취한 상태에서 '밀어버려~'라고 한 마디 하셨던 걸로 말이졉.

멋진 오빠의 뛰는 모습에 열광하던 소녀팬들, 그 사건 이후로 경기장에서 사라졌고... 더불어 동시에 K리그에 잠깐 동안 몰렸던 사람들은 모두 다시 흩어졌죠.

그런데 말입니다... 축구는 물론이고 야구도 꽤나 즐기는(롯데팬이 이렇게 말을 하면 욕먹는다는 소리도 어디서 들었던거 같은데...) 입장에서 이른바 '빠순이'들에 대한 시각이 존나 이중적이라는 걸 대부분의 남성팬들은 생각하지 않는거 같더라구요.

예를 들어... 99년의 선수협 파동 당시에... 선수협 사무실에서 가장 궂은 일들을 맡아서 했던 팬들은 선수협 결성대회장에서 특정 선수의 등장에 '꺄악~'하고 괴성을 지르며 넘어갔던... 바로 그 소녀팬들이었거든요.

축구라고 뭐 달랐을까요?

뭐 야구는 그나마 팬층이라도 두껍고, 연고지 이전과 같은 터무니 없는 행동을 하면 장사 안된다는 거 보여주고 있는 사례들이라도 있지만... 축구는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졉.

하여간... 올드팬들이 신입팬들을 구축하는 일이 벌어지는 걸 보고나서 이런 저런...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었는데... 이 비슷한 현상이 정치판에서도 벌어지는 걸 보면... 재교육 시켜야 할 인간들이 왜 저리 많나 싶은 생각이... 휘잉~ 하고 지나갑니다.


2008년 8월 1일 금요일

반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방부가 금지도서라고 20년전으로 시계를 돌린 것도 문제긴 하지만... 저 책들 중에서 읽은게 딱 4권 밖엔 안된다는 건... 지가 심히 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요거... 촘스키 영감님이 쓰신건데... 번역이 꽝이라서 읽으면서도 불평불만이 많았던 책이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여기도 아마 읽고난 감상문 하나 올려놨던 걸로 기억하며, <세계화의 덫>은 읽은지 꽤나 오래되어서 기억 속에서 좀 희미한 상태고... <핵과 한반도>는 책쓴다고 지나가면서 읽었던 책이거든요... 흠... 글구보니 <507년>이랑 <세계화>는 제가 광명중앙도서관에 기증했던 것들이네요.

암튼... 빨리 나머지도 다 읽어야겠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