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9일 토요일

박태환의 400미터 금메달을 보고 든 잡생각

이 두 개의 글이 먼저 생각나더군요. 두 글 모두 2006년에 읽어서 그런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1. 2006년 3월 30일 한겨레21 이윤기의 종이비행기 47
 
"야구를 보면서 딴 생각을 하다" (로그인하셔야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가 시작되던 해, 나는 베트남에 파견됐다. 보충병 시절, 지휘부는 야구 좀 해본 ‘놈’ 나오라고 했다. 나가서 테스트 받고 선수가 되었다. 미군과의 야구 시합이 있다고 했다. 가까운 비행장에서 미군 팀과 붙었다. 15 대 2쯤으로 참패했던 것 같다. 꽤 크고 힘이 좋았던 나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짐승의 체력을 지닌 놈들’,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뒤에 다른 미군 부대와 축구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야구와 비슷한 점수 차로 또 참패했던 것 같다. 나도 선수로 뛰기는 했지만, 시합 내내 공은 두어 번밖에 못 차봤던 것 같다. 미군 부대의 ‘매스홀’에 들어가 처음 보았던 놀라운 광경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마실 것과 어마어마하게 기름진 음식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거대한 뷔페 식당이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가 꽁보리밥 한 덩어리, 아니면 국수 한 그릇 먹고 부추밭에서 야구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미국 아이들은 고기 먹고 잔디밭에서 야구 연습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날 처음으로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금국에 밥 말아먹고 있을 동안 미군들은 매일 그렇게 먹고 마시고 있었을 것이 아닌가. 짐승 같은 체력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 것이지 싶었다.
...
 
1990년대 들면서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운동장에서, 골프장에서, 축구장에서 서양의 ‘떡대’들을 올라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코끝이 찡해질 만큼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 자랑스럽다는 느낌 뒤로, 코끝이 찡해질 만큼 서글프다는 느낌 또한 묻어든다. 덩치나 체력에서 서양인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우리 선수들의 당당한 모습 뒤로, 북한 사람들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다. 나는 북한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TV 화면에 비치는 북한 사람들은 우리와 견줘 왜소하고 깡마른 것처럼 보인다. 외양도 조금 다른 것 같다. 흡사 미군과 야구 시합하던, 35년 전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지금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사람들의 외양이 같아지기까지 또 35년쯤 걸릴 것이라는 어림짐작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야구 보면서 딴생각을 한 것이다."
 
2. 2006년 6월 21일 사커월드 게시판 pubpub님의 글
 
 
"옛날엔 사우디한테 지면 맨날 '오일 달러'이야기 했다. 모깃불 피워놓고 대청마루에서 모기장을 쳐 놓고 수박 먹으며 사우디에게 한골 두골 먹는 대표팀 경기를 본 사람들은 안다. 우리는 애당초 이정도 수준, 즉 세계에서 범용하게 싸울수 있는 수준이 되기위해 안달을 했다고. 이제야 겨우 '한국애들은 전자제품 잘 만들어' 라는 소리를 듣는 수준이지만, 예전엔 '한국 제품은 싸구려' 라는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었다고.
 
조국? 대한민국? 웃기네, 학교다닐때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는 '반공'이었고 '새마을 운동'이었다. 밤에는 통행금지가 있었고, 경찰이 치마 짧다고 자 들고 다니면서 여자들을 연행하던 이상한 나라였다. 메이지 유신이 일본을 살린 구국의 결의 였다며 '유신체제'를 선포하는 대통령이 있던 이상한 나라였다.
 
우리는 세계에서 말하는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해 투쟁했다. 맨날 한국이랑붙으면 승점 먹고들어가던 나라가 아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한테 3점 정도 먹고 들어가던 '깔아주는 나라"가 아니다. 젠장, 이정도면 어때?"
 
구기종목에선 상당히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갔음에도... 아직까지 우린 육상과 같이 '절대적인 spec'이 경기력의 차이를 가르는 종목에선 힘을 쓰는 편이 못됩니다. 1930년대에 수영에서 강자로 잠시 등극했었던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동양인의 체형에 맞는다'는 평영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습니다.
 
뭐... 양넘들이 훨씬 더 크니 '물을 긁을 수 있는 팔 길이'라는 사이즈에서 절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자유형이나 접영, 배영은 밀릴 수 밖에 없는게 'spec의 차이'니 말입니다.
 
물론 투자한 만큼의 성과들을 얻어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시설 투자도 제대로 하지 않는 옆 나라는 그 일본인들이 말하는 '동양인들의 한계'를 낼름 넘어버리고 있는거죠. 그것도 자기들보다 인구수는 절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옆나라인 중국과 비교하면 1/25 정도의 인구를 가진 나라가 말이죠... 아마 그래서 2007년에 박태환이 금메달을 딸때 그렇게 흥분했던 거 같습니다.

작년에 네팔에 있을때 그 소식을 일본의 위성방송을 통해 봤었거든요. 한겨레21의 신윤동욱기자도 아마 같은 방송을 봤던 것 같은데... 그 친구들 엄청나게 흥분하더군요. '스바라시'가 몇 번이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과를 냈던 종목들, 그리고 그 팀의 지도자들이 conventional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2002년 월드컵의 히딩크 감독이 대표적인 사례죠. 16강이었던 이탈리아와의 한판승부에서 1:0으로 지고 있는 상태에서 수비수를 모두 빼버리고 공격수를 투입했던 용병술... 이런거 아무나 생각하는거 아니잖아요. 도대체 92년부터 02년까지의 10여년동안 부상당하지도 않은 홍명보를 빼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었냔 말이죠...

2006년 WBC의 김인식 감독도... 단기전의 특성에 철저하게 집중한 형태로 팀을 꾸렸고, 그에 맞는 작전들을 구사했었죠. 특히 8강전에서 마지막에 일본과 붙었던 경기는 Classic한 야구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죠.

이번에 박태환의 스승인 노민상 감독도 비슷하더군요. 고등학교 중퇴인 이 양반, 스포츠 생리학에 빠져들었고 이를 근거로 한 훈련계획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학교졸업장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세상... 아마 이번에 공정택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지지했던 강남 학부모님들이 원하는 세상이죠.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섬을 벗어난 세상에선 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박태환과 노민상 감독 콤비가 보여준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눈에 들어왔던 건... 외국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들을 뒤집어서 제한적인 정보들만을 국민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권력을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강남 졸부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명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의 기본적인 구조는 '중소기업'의 그것이지 '선단을 이루는 재벌'형태가 아니라구요. 그걸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도전을 하기 보다는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는 이들이 그들이졉.

경기 하나를 두고 지나치게 정치과잉의 글이란 생각도 쬐끔은 합니다만... '보통국가'에서 다시 '이상한 나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저만 가지진 않으실거라는 생각에... 글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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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미터부터 앞서나가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들었던 생각 중에 하나는... 저게 사람이냐 어뢰냐... 였습니다. ㅋㅋ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세계를 누비는 평범한 대학생, 박태환
    얼큰진지남 (SKTelecom 블로그 에디터) 박태환, 예상보다 평범한 모습으로 다가오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작은 180cm정도의 키. 편한 반바지에 티셔츠와 모자. 광고에서 얼핏 봤을 때는 염색한 줄 몰랐던 머리. 박태환 선수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수영을 하는데 있어서 손, 발, 키가 모두 큰 것이 유리하다고 하던데 박태환 선수의 손, 발, 키는 특별히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균형이 잘 잡힌 모습이었습니다. 거리에서 마주쳤더라면 그저 균형 잡힌 몸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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