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7일 수요일

그게 변절의 문제일까?

이 글은 산하의 이 글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2000년에 서갑숙 언니가 책 한권 써서 난리가 났었을때, 어리버리하게도 난 표현의 자유 문제만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술자리에서 그 책 이야기가 나왔을때 이혼한 한 친구의 말에 뒤집어지고 말았고.


"바보야. 그건 대한민국 여성의 상당수가 불감증이라서 그래. 별 느낌 없다가 한 번 올라가니까 이 좋은걸 왜 공유 안하지?라고 오바질했던 겨."


대한민국 여성의 절반 가까운 이들이 사실상 불감증이라는, 뭐 그런 조사결과를 접했던 것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남성의 성 자극과 관련해선 별 기기묘묘한 욕망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개발되는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었던 셈.


방대한 에너지와 자원이 엄한 곳에서 소모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만들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것들도 작동되고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좀 들었다. 다분히 시대착오적이고도 파편적인 '선비'나 '지사'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인생 뭐 있냐?'로 바뀌는 것은 '지사'니 '선비'니 하는 단어들이 '지정하는 삶의 폭'이 너무 좁기 때문이 아니냐는거지.


좀 더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 자체가 별 생각 없이 사는 사회라서 그런게 아닌가 싶더라고.


예를 들어, 세계 최대의 어항인 청계천(뭐 4대강에게 그 자릴 물려주겠지만)이나 서울 숲을 돌아다녀보면 만든 놈이 정말 아무생각 없음의 극치를 달린단 말이지. 아파트 단지에서 강변으로 나오는 곳에 만들어진 서울 숲의 경우... 원래 애들이 인라인 타러 가던 최단코스를 '산책로'로 만드는 헛짓을 해놓은 덕택에 사슴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뭐 관리 안되는 어항은 돈만 부어넣고 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건, 그 정도의 공간도 서울에는 없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인 집 값이 뛰기 때문 아니냐고. 다섯 살 훈이의 한강 르네상스인가 뭔가를 봐도 조또 암생각 없는 공구리짓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도, '전망 좋다'고 한강변 아파트 값들은 올라간다는거지. 동선의 비합리성 같은 기초적인 디자인은 '경험해보지 못한 형이상학의 세계'지만 '집값'은 '교환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는 물건이란 말이지.


가오잡고 말한다면 '철학의 빈곤'이겠지만... 철학이라는게 결국 세계관의 문제라는 걸 감안한다면... 시야 자체가 그만큼 좁게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코끼리 다리 한번 만져보는 것만으로는 택두 없는데, 코끼리 다리를 만진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 비슷하게 붕어빵으로 찍어놓은 빈약한 뇌의 논리회로도는 '그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공간에 노출되면 바뀐단 말이지.


그러다보니 중요한게 뭔지가 오락가락하잖아. 예를 들어 요즘 아파트치고 놀이터에 모래가 깔린 경우가 거의 없잖아? 견공들이 똥 누는 바람에 기생충 옮는다고. 그러곤 폴리우레탄을 깐단 말이지... 근데 폴리우레탄은 기생충 알의 전달 매개체가 안되나? 기어다니다가 입에 손 가져가면 똑같은데. 거기다 한 채당 수십억대나 몇억대나 아파트 공사 들어가는 업체는 모조리 다 '최저입찰한 놈'들이라고. 싸구려 폴리우레탄에 싸구려 본드로 붙여버리면 거기서 노는 애들의 몸에 뭐가 쌓이겠어.


인간은 수많은 박테리아들과 공존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걸 통으로 부정하면서 애들은 알 수 없는 질환들에 시달리는게 또 현실이잖아. 광고는 유해세균이라고 하지만, 원래 몸에 좋은것들이 더 걸러내기 쉽단 말이지. ㅋㅋ


난 아직도 세상에는 모르는게 많아서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주변의 꽤 많은 선배들은 '알아왔던 수많은 것들이 안 통한다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알 수 없다. 내 자신만이라도 수양하자'는 쪽으로 가더라고. 물론 자신에 대한 수양이야 필요하지. 어떤 넘들을 상대해야 할지, 어떤 상황에 빠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이 흔들리면 말짱 황이니 말야.


선의만으로도 누군가가 경제적 곤궁을 겪을 수도 있는 복잡한 세상에... 부박한 인간들의 오락가락함을 '변절'로만 보는 것도 좀 쉽게 보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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