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2일 목요일

나를 알릴 것인가, 남을 이해할 것인가...

제가 잘 노니는 커뮤니티에서 지난달인가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회원의 동생이 베트남 처자에게 꽃혀서 베트남에 대해 알려고 하는데... 어떤 것들을 봐야 하는지, 혹은 그 나라에 대한 정보들을 좀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죠.

움... 뭐 국제 연애질을 하는 커플이 또 하나 나왔다는 것은 축하해줘야 하는 거지만, 한 국가를 안다는 것이... 고거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은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 대한 '정보'라는 것의 의미는 또 뭘까 싶구요.

대학시절, 중국 공산당사를 수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중국학과 전공수업을 찾았던 겁니다. 2학년 전공수업이라 '우리말'로 강의가 된다는 것도 있었구요. 근데 왜 '당사'냐구요? 현대 이전의 중국에 대해선 별 관심 없었거든요. 제가 알고 싶은 부분은 '지금의 중국'이었기 때문에... 얘네들이 어떻게 무늬만 빨간 나라를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겁니다.

당시 강의를 담당했던 교수님은 '문화대혁명'을 '문화대동란'으로, '대장정'을 '대도망'으로 칭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이었는데... 저희가 교과서로 봤던 것은 중국 공산당이 공식 편찬한 '당사'를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반공주의 화교 출신인 교수님에 의해 '무협지'에 가까운 '공식 공산당사'는 처참하게 까발려졌었습니다.

전 이 수업을 밥먹고 사는데 있어서 꽤 도움이 된 수업중에 하나라고 손 꼽습니다. 몇차 전인대에서 어떤 것들이 결의되었다는 전문을 읽으면 걔네가 앞으로 뭔 짓을 할 것인지 대충 감이 잡히니 말입니다. 해설기사가 거의 필요없죠. 청나라 이후 최대의 국토면적을 자랑하게 된 그 과정에서 어떤 '사기'들이 동원되었던 건지, <중국의 붉은 별>과 같은 무협지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충분히 배웠던 셈이니까요.

그렇다고 강의 하나로 제가 무슨 중국 전문가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인이 알아두면 좋을 것들에 대해선 충분한 분량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YS시절에 전경련이 돈을 대고 안기부가 기획했던 대학 학생회장단들의 보름간 중국여행 자체가 뻘짓이라는 것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물주와 기획자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니네 생각하는 사회주의, 그거 조또 아니거든'에 방점이 찍혔던 반면... 저희는 '중화 제국주의의 태동'을 보고 있었으니까요.

다른 부분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미국 드라마중에 하나가 Criminal Minds인데요... 연쇄살인범들을 추격하는 FBI의 행동분석팀의 활약을 그린 겁니다. 개별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철저한 자료조사, 인간의 심리, 행동양태들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이들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의 긴장감은 다른 수사물에선 경험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믿거나말거나 심약한 저의 경우엔... 이거 보고 나서 가끔 악몽을 꿉니다.

근데 이 드라마의 첫 편이 좀 흥미롭습니다. 행동분석팀을 떠나 콴티코에서 신입요원들을 교육하던 백전노장과 상당히 편집증을 가지고 있으면서 석박사 학위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연구보조원이 팀에 합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거든요.

연쇄살인범들처럼 생각해서 그들을 체포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과정이 FBI 훈련소에서 진행된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닐까요? 그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이다...라는 추정이 가능하다면 어떤 사안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지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국가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현대사, 언어, 문화 예술... 이런 부분들에 대해 조금 더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폭의 크기는 훨씬 더 넓어지기 마련입니다.

주변국가들이 왜 저런 행동들을 하는가, 왜 저걸 이슈로 만드는가를 이해한다면... 건드렸다고 화내는 것보다 훨씬 더 '실용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란 거죠... 일본의 정치인들이 왜 야스쿠니를 가는가에 흥분하기 보다는 걔네들의 사고체계를 이해해야 궐기대회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걸 알고보면 한국에 있는 일본인들에게 독도와 야스쿠니 등에 대해 왜 그러냐고 질문하는 것보다... 정말 효과가 있는 '연대'를 구축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그 정치인들을 뽑는건 그 나라의 국민들이지 우리가 아니니까요.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언론이라고 하는 것들, 엄밀히 따지고보면 당기관지들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생각하는 것들, 혹은 중국 공산당의 목소리가 나오는 체널이라구요. 그러니 중국 언론이 어떻게 나왔다고 볼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나오고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이건 주변국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다는  부분은...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습니다. 남의 나라 교과서 고치라하고 하는 건 엄밀한 의미에서 '내정간섭'에 가까운 것이거든요. 반면 그 나라를 이해하고 있다면 '남미에 나무 심어서 탄소 크래딧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판단은 안하지 않겠어요?

아침에 이 기사 읽고 나서 떫떠름해져서 글적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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