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0일 일요일

7급 공무원이 불편했던 이유

몇년 전에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한국 드라마에서도 첩보기관의 활약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수 많은 드라마들이 명멸하는 미국의 경우엔 액션, 혹은 수사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정보기관의 활약을 꽤 진지한 모드로 다룬 <The Agency>,  첩보원이 국가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개인일 경우엔 어떤 개그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Burn notice>, 등이 첩보기관, 혹은 스파이의 활약을 다루고 있죠. 일의 특성상, 첩보쪽은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훨씬 더 많은 편입니다. 아닌 말로 국가가 허가해준 도둑이 이들이니 이들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는 시리즈를 만드는 건 좀 부담되잖아요?

반면에... 남의 나라에서 보낸 정보원들을 감시, 체포해야 하는 방첩부대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죠. 말이 필요없는 <24>를 시작으로 FBI가 주인공인 드라마들은 최소한 한 번씩은 테러리스트나 타국 첩보원 체포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낑겨들어갑니다. <Numb3rs>, <Criminal Minds>,  그리고 영국 드라마인 <Spooks>까지.

근데 이거 아시나요? 상당수의 국가들은 스파이들을 키우고 남의 나라에 집어넣는 첩보기관과 남의 나라에서 침투한 이들을 상대로 하는 방첩기관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정보기관은 CIA, NSA등이지만 방첩기관은 FBI, 영국의 정보기관은 MI6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진 SIS고, 방첩기관은 "5"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SS입니다. 프랑스는 DSGE가 정보기관이고 방첩기관은 DST죠. 유명한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정보기관이지만 방첩기관은 Shin Beth라는 별도의 조직입니다.

왜 이렇게 번거롭게시리 둘로 나눠서 돌리냐구요? 그건 첩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60~70년대, CIA는 수많은 쿠바 사람들을 포섭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포섭한 사람들은 모두 쿠바 비밀경찰이거나 그 끄나풀들이었죠. 그 결과... 상당한 돈을 미국이 카스트로에게 열심히 가져다주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었죠. 이 정도의 스켄들이면 기관이 문을 거의 닫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갑니다만... 소련 권부 근처에 있는 이들을 포섭하는데 성공했기에 있을 수 있는 실수 정도로 넘어간 적도 있습니다.

상대 국가의 고위 관계자를 포섭할 수 있다면 정보기관의 입장에선 금광을 캔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만... 반대의 경우가 된다면 그 보다 더한 악몽은 없을 겁니다. 실제로 CIA의 소련분과 방첩부장이 KGB에 포섭되었던 적이 있었고, KGB의 지역담당자가 CIA에 포섭된 경우도 있었거든요. 가장 깬 상황은 CIA방첩국장이 KGB에 포섭되어 수많은 자원(asset)들을 숙청했던 경우입니다. 상대방에게 침투한 이들을 Mole(두더쥐)이라고 부르고 이들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는 것도 이런 경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무리 냉혈한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조직 소속일 경우엔 사실관계의 파악에 들이는 에너지보다 의심받는 이들을 변호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들을 소비하게 되죠. 이런 기술적인 문제들 뿐만 아니라... 첩보기관과 방첩기관은 업무방식도 사실 상당히 다릅니다.

사실 <7급 공무원>을 보면서 불편했던 지점도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엄밀하게 보자면 둘 다 '방첩업무'에 투입되어 있는 자원들이기에 서로 추적 및 도청기를 부착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긴 많이 어렵습니다. 같은 국 소속일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졉. 아니... 무엇보다 같은 기관이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에 대해 자료 검색에 들어갔을때 같은 회사 소속이라는게 바로 뜰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게... 가장 맹점이었던거죠.

CIA와 FBI가 서로 자료 공유가 안되어서 버벅거리는 상황이랑 좀 많이 다른 것이 한국적 상황인데, 그 전제 자체가 캐무시되어 있으니 몰입이 안되더라는거쥬. 한국의 현실을 놓고 봤을때 애초부터 그 설정인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가 성립되기 어려운데 그걸 그냥 밀고 가버리니... 김하늘과 강지환이 아무리 열심히 망가져 준다고 한들... 겉돌 수 밖에 없는거죠.

더 확 깨던건... 해외파트 팀장 아저씨의 어학능력이었습니다. 개그로 설정한 부분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러샤 아저씨들 추적하는 팀의 팀장이 러시아 말을 한 마디도 못한다는 건 좀 깨잖아요? 웃겠다고 들어갔다가 열심히 웃어버렸던 장면은 BB탄 총격전과 엔딩 크레딧 부분이었으니 김이 좀 빠지졉.

근데... 어쩌면 현실이 더 개그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 중, 북, 러, 일의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지는 공간에서... 첩보기관이자 방첩기관은 그 위치가 공개되어 있고(이런 배짱 부리는 나라, 미국 밖엔 없습니다. 모사드의 경우엔 그 대빵의 이름과 얼굴조차도 1급 기밀이라구요. 프랑스도 DGSE가 어디에 있는지 공개가 안되는 판국에), 그 수장은 이런거 잘 모르는 분인 나라잖아요? --;;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7급 공무원’, 제대로 만든 코미디 영화!
    김하늘, 강지환 주연 코미디영화 <7급 공무원>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 코미디영화장르는 항상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웬만큼 웃긴 영화로 만들어도 내용이 빈약하거나 허약하면 저질영화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황당무계한 코미디영화는 아무리 웃겨도 코미디영화가 아니라 그냥 영화 같지 않은 영화로 평가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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