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3일 수요일

도서관에 대한 수다

연애 깨지고 나서 한동안 술독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속이 더부룩~하고 여기저기 삐그덕거리는 부품들이 많아서 병원에 갔더니 위가 부어있고, 근육이 급속도로 붙는 운동을 하다가 한동안 안 해서 몸의 균형이 전체적으로 무너졌다는 진단을 받았죠. 그래서 며칠간 그 좋아하는 고기를 멀리하고 술도 안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닝기리... 이게 취해서 정신없이 자던 거이 좀 되다보니... 피곤해서 누우면 바로 뻗었다가 2~3시간 뒤에 깨고, 깨고 나선 다시 잠들지 못해 미치는 현상이 계속 반복되는 중임다. 가카 치세에 살아남기 위해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한 사람에게... 다시 시작해보자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미안해서 속만 썩이다보니 불면의 밤이 더 괴롭습니다.

여튼... 우짜든 다시 잠을 청해야 하는데... 점점 더 말똥말똥해지는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숑에 결국 컴터 켜고 이 인터넷의 오지까지 찾아오셔서 별볼일 없는 글들에 댓글까지 달아주시는 분들께 답글 드리고 나니까... 문득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잠도 안오는데 그 이야기나 좀 늘어놓을까 합니당.

지금이야 여기저기에 이런저런 글질하는 넘입니다만... 저... 중3때까지 미국식 정의를 따르면 한글 문맹이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글로 혹은 말로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는가가 문맹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걔네들의 척도를 놓고보면... 중딩 시절에 대한민국 표준어린이의 국딩 3년차 수준의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었거덩요. 뭐 그때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쥬.

하야... 감행한 거이... 일단 읽고 나서 나중에 이해하기 전법이었고, 이 전장은 중/고딩때의 도서관이 됩니다. 문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몽땅, 한 권도 빠짐없이 읽는데 걸렸던 시간이 뭐 그렇게 길지 않더라는거죠. 중3때 애들 연합고사 준비한다고 복작거리던 때에 도서관 서고에 들어가 책만 읽었습니다. 펼쳐서 볼 수 있는 책들을 다 보는데 딱 5개월 걸리더군요.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 들어가서 머릴 학교 표준형으로 맞추는데 고생 좀 했지만, 여튼 그 학교 서고의 책들을 다 터는데 걸렸던 시간 역시 6개월이었습니다.

대단한거 같나요? 별루 대단할 거 없습니다. 요즘으로 놓고보면 알라딘 플레티넘 회원이 2년간 그 자격을 유지하면 모을 수 있는 서가 정도가 학교 도서관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책이 그거 밖엔 없었냐구요? 뭐 그건 아니쥬. 다만 사람들이 흔히 비유하는 가카의 생물학적 유사 종의 생리적 결과가 책에 붙어 있으면 그 책 던져버렸거든요. --;;

머... 그건 그거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입학 자격 통보를 받았던 날 대학 도서관에 갔다가... 급좌절 모드가 됩니다. 전공과 관련된 책이 얼마나 있는가 해서 가봤더니... 꼴랑 30권, 그것도 1/3은 불어로 쓰여져 있두만요. 그 즈음부터 책을 제 돈으로 살 수 있었고, 책 보는 재미에 꽤나 빠져서 지냈던 결과... 지금까지 대충 1만 여권 정도의 책들을 소화했는데... 올 여름에 세상을 떠난 대통령님의 서가에 꽂혀 있는게 30만권이라는 이야기엔 입맛만 다시게 되더군요;;; 그런 넘에게 대학 도서관의 수준이라는 거, 참아주기 어려웠습니다.

여튼...

운동물 먹으면서 충격받았던 건... 서울대학교의 전체 예산이 동경대학교의 도서관 예산이랑 비등비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제가 대학 2학년때 봤던 거니깐두루... 거의 20년 전의 이야기쥬. 지금 생각하면 사서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일했던 건데... 너무 어려서 그랬었는지 학교에 책 들어오는 속도, 참 머시깽이 했었죠.

그러다가... 97년에 캐나다를 갔었습니다. SFU나 BCU의 도서관은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겠습니다. 비교 상대가 아니니깐요. 벤쿠버 광역시의 버나비라는 한 지역 도서관의 장서량이 그 당시 서울대 법대 도서관 장서량의 3배였습니다. 정말 짜증 났던 건 뭔지 아세요? 사서가 주민들의 민족 구성 분포의 페센테이지에 따라서 책을 못 갖췄다고, 자기네들 갈길 멀다고 이야기하더라는 겁니다.

그러곤... 98년에 귀국했다가 99년에 해운대 도서관에 거의 출근을 했었죠. 딱 제 중고딩 시절 수준이었습니다. 2000년에 마포 평생학습관의 도서 수준을 보고 기도 안 차 했었구요.

그러다가... 2005년에 광명시의 두 도서관을 정말 집처럼 이용했었을때... 장서 규모가 달라져 있더군요.  88년 초에 <고요한 돈강>과 <토지> 전질이 있는 걸 보고 만세 불렀던 목동 청소년 도서관과는 질적 차이가 현격했죠. 사이드의 책을 거기서 읽을 수 있게 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요.

문제는... 완전 개가식이 아니었던 까닭에, 책을 대출 받아야 했던 현실이었습니다만...

어쩌면... 도서관 운영과 관련된 한계들은 명확하더라도... 나름 애를 쓰려고 노력했던 이들과, 그런 의지조차 없는 이들의 세계가 부딛히는게...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뭐... 지금 일하고 있는 나와바리에 공공도서관이 영양가 없는건 별 차이 없습니다만서도. --;;;

댓글 4개:

  1. 제 블로그 이웃 중에 enki라는 국회도서관 사서가 계신데... 4대강에 들어갈 예산으로 4대강 따라 도서관과 방과후 공부방을 짓는 상상을 하신 적이... (http://enki79.egloos.com/2236399)

    그게 그런데 얼마나 엄청난 미래성장투자인지 생각하면 막 구체화하고 싶어지고 그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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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모코 - 2009/12/24 10:20
    근데... 도서관은 물론이고 복지 부분에서도 최종 결정권자 한 명이 바뀐 걸로 좀 깨는 형태가 되는건... '철학'의 문제, 그리고 '공유되는 목표' 자체의 문제가 이리저리 엮여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두만요. 여튼... 메리 클스마스 되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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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 역시. 삼엘 님의 통찰력이 거기에서 비롯되었군요. 다독 ^^



    이미 아실지 모르겠으나, 공부방 독서실 을 만들지않아 지금도 가끔 주민들로부터 항의를 받는다는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 이라고 있어요. http://www.l4d.or.kr/ 작은 씨앗. 잘못해서 죽지 않도록 시민들이 잘 가꿔야 할텐데 말입니다. ^^



    삼엘 님, Happ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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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내 심장속의 뱀 - 2009/12/25 07:47
    통찰력... 이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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