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1일 목요일

에반겔리온 序: You are (not) alone에 대한 잡담

C8을 한 열댓번쯤 하면서 용산 CGV로 갔습니다. 광명에서 여의도까지 무려 3개의 CGV가 있음에도 이 동네들에선 개봉을 안하고 용산과 상암에서 그것두 하루 한 번이나 두 번쯤 상영하는 짠돌이 마케팅도 좀 거시기 했거니와... 이렇게 모아두면 95년 TV판에 홀딱 맛들이 갔던 오타쿠들이 서로 뻘쭘해하면서 볼 수 밖에 없으니 나름 좀 난감했거든요.
 


암튼... 보고나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좀 돌더군요. 이미 12년전에 TV로 나왔던 것을 두고 스포일러라고 붙이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만... 4부작으로 진행될 극장판 에바의 첫 번째 작품인 이 넘에 대한 해설은 디제님이 올려놓으신 이 글로 대체합니다.
 
사실 제 머릿속에선 같은 섬나라에서 만들어진 아이들의 성장을 다룬 두 텍스트가 아주 많이 다르더라는, 왜 이게 다를 수 밖에 없는가가를 짚어보는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에바의 비교대상이 될 넘은 바로 롤링 여사의 Harry Potter 7부작입니다.

이유는 주인공인 해리와 신지 둘 다 인류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황당한 시추에이션을 만나지만 이 두 아이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선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졉. 예를 들어 Harry Potter의 2편인 <Chamber of secrets, 비밀의 방>의 마지막 장면은 지니를 이용해 다시 부활하고자 하는 볼드모트를 12살 밖에 안된 꼬맹이가 목숨걸고 대적하지요. 바실리스크에게 물려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지니보고 먼저 나가라고 하는 장면에 이르면 저 꼬맹이가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엄청난 짐을 어떻게 저렇게 담담하게 받아드리나... 란 생각밖엔 안들죠. 물론 본격적인 사춘기가 묘사되는 5편 <The order of the phoenix, 불사조 기사단>과 6편 <Half blood prince, 혼혈왕자>에서 쬐끔 반항을 하긴 합니다만.

이건 아무래도 해리가 사실은 비범한 가족의 후손임에도 속물인 이모의 집에서 자랐다는 것, 그리고 기본적인 틀이 영국의 '공립학교'가 아니라 학비가 엄청나게 비싸 엔간한 민간인들은 접근이 어려운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이해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워낙 끌려다녀서 그 의미 자체가 많이 퇴색하긴 했습니다만... 롤링은 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영국 귀족 계급의 아이가 어떻게 커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반면... 안도의 에반겔리온은 애초에 이 만화 자체가 얼라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Dynamic Korea라는 국정홍보처의 구호가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리는가를 시시때때로 곱씹어보게 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은 <초 안정국가>입니다. 관심의 대부분을 자기 자신에게 쏟을 수 있으며 사회적 이슈들 자체의 파급력이 우리와는 또 다르죠.

그런데... 1985년, 미국의 압력으로 맺을 수 밖에 없었던 두 개의 합의(반도체 합의와 플라자 합의) 이후, 버블붕괴는 이들의 삶의 기반 자체를 붕괴시켜버립니다. 에바식 표현을 빌자면 이거 Second Impact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2차 대전 패배이후 '일본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 자체가 조또 의미없는 것이 되었으니까요.

우리로 치자면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온 몸을 바치겠다'며 열심히 일해 세계적인 수준의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으나... 자기에겐 국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던 겁니다. '개인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던 일본과 아직도 집단적 가치가 우선시 되는 한국'이라고 이분화하는 것도 좀 거시기 하긴 합니다만...

여기에 Harry Potter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어른들까지를 포섭하는 구조를 가지는데에 반해, 에바는 거의 '키덜트, 혹은 adult Children'이라고 꼽히는... 몸은 어른이나 애들처럼 노는 친구들을 중심이라는 것도 결정적인 차이를 가집니다. 대표적인 캐릭터, 바로 이와나미 레이죠.
 


이 14살짜리 소녀의 나신이 심심찮게 나타나는 이유가 뭐겠어요. 더군다나 레이라는 캐릭터는 '엄마, 여동생, 세상 모든 여자들의 총합'이라고 불러야 하는 판이니 말입니다.

이건 본인이 오타쿠면서도 오타쿠들에게 질겁을 했던 총제작자의 자신이 에반겔리온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캐릭터의 일부분들을 가지고 있으니 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좀 하게 되더군요.

98분짜리 에니메이션 한 편 보면서 두 사회를 비교하고 있는 거이... 뭐 그렇게 상황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번의 序는 자꾸 이렇게 바라보게 만들더군요. 음... 몇몇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지방개봉관도 더 잡을 예정이라고 하니, 떡밥으로 던져준 2부(破)도 충분히 한국에서 개봉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제가 이걸 극장에서 볼 수 있느냐는 좀 다른 이야기겠습니다만...

ps. 그래서 보라는거냐.. 말라는거냐...라구요? 에바광팬과 에바에 대해 이야길 들었는데 한번도 보지 못하신 분껜 추천, 이전의 TV판을 보고 "일본 쪽빠리 변퉤세퀴들!"이라고 하신 분들이나... TV판 보고도 무덤덤하셨던 분들은 비추되겠습니다.

댓글 2개:

  1. 에바라.... 벌써 13년 아니.. 14년전 이야기이군요 -ㅅ- 주인장님께서는 20대이셨구 전 그때 10대... 하여간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덕후(?)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긴 했습니다만 꽤나 빠졌던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더 이상 빠지지 않기 위해 안 보고 있습니다 ㄷㄷㄷ 여기 블로그 북마크해두고 나머지 글들도 찬찬히 읽겠습니다. 그럼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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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식고 - 2009/01/08 00:01
    ㅋ. 작년 이맘때 쓴 글을 보시는 분도 있다는 걸 잊어먹고 있었네요. 사실 글 올리고 나선 오탈자 체크도 제대로 안하는데. 쬐끔 민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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