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6일 화요일

<무한도전> 인도편이 뭘 잘못했나요?

워낙 TV를 잘 안보는 편이다보니 무슨 논쟁들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좀 반응이 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남들의 논쟁이라는게 저랑 별 상관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또 그런 일들에 관심을 가질 만큼 최근에 한가한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마님께서 즐겨보시던 <무한도전>이 인도에 가서 뭘 찍었는데... 그게 논란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니... 쬐끔 땡기더군요. 결국 찾아서 봤습니다. 결론은... "섬나라 국민이로고~"와 "류시화 죽일 놈!" 두 개로 압축되더군요. 이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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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6년 7월쯤에 Varanasi(현지 친구들은 '와나르씨'라고 발음하졉)에서 찍었던 겁니다. 벽에 뭐 동글동글한거 보이시죠? 저거 소똥 케이크 되겠습니다. 어떻게 만드냐구요? 소똥들 줏어다가 물 조금 집어넣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다음 눌러서 모양을 만들고 그걸 벽에 붙여 말리는거죠. 저게 위생적으로 보이시나요? ^^;;

근데... 저거, 인도에서의 '소'라는 존재에 대해 이해를 한다면 '위생'의 문제로 바라보긴 좀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힌두교'하면 '소를 숭상하는 종교' 정도로만 생각들을 하지만, '소'가 인도에서 가지는 의미를 문화인류학적으로 따져들어가면 왜 그런가에 대한 단서들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어느 농경사회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소'라는 존재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일단 '우유'라는 상당히 고단백질 음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 '우유'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합니다. 특히 인도에선 이걸 '커드'라는 일종의 요구르트로 많이 활용하죠. '커드'는 얼음과 설탕, 그리고 여러 과일과 섞어서 '라씨'로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많은 육류들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인도와 네팔을 여행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먹어봤을 '탄두리'가 붙은 음식들은 고기를 각종 향신료를 넣은 커드에서 한번 띄운 걸 불가마에서 구워내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요? 날이 존니 덥다보니 육가공 식품들을 보관하는게 그렇게 쉽지가 않았거든요.

또한 어느 농경사회나 마찬가지로 '소'는 살아 있는 농사기계기도 하죠. 뿐만 아니라 '소똥'은 상당한 수준의 화력을 제공하는 훌륭한 천연 난방용품이기도 했습니다. 이런거 하나씩 가르쳐주느니 간단하게 '신격화'시켜서 못 먹게 만드는 게... 그게 쉽게 먹히죠.

마빈 헤리스(Mavin Harris)라는 문화인류학자가 쓴 대중서인 <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는 '힌두교의 암소 숭배'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증 문자중독자들인 제 친구들도 이걸 안 읽어본 이들이 태반이고...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는 여행자 대부분은 가이드 북인 <Lonely Planet:인도편> 혹은 <인도 100배 즐기기> 하나만 딸랑 들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 친구들은 그나마 좀 낫죠.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열림원) 같은 거 읽고 간 친구들은 당황스러운 일들을 아무 생각없이 합니다.

주 인도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가장 질겁을 하는게... 약간 눈이 풀린 아가씨 하나가 어디서 릭샤꾼 하나를 끌구 와서 "저 얘랑 결혼하려고 하는데, 국적 포기 어떻게 하냐?"라는 질문을 할 때라고 하더군요. 인도에서 인도인과 결혼하려면 자국적을 포기해야 하는데... 문젠 '국적'이라는 넘이 쉽게 리펀되는게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떼를 쓰는 언니들이 종종 등장해 사람들을 황당하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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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인도에서도 가장 못 사는 동네인 비하르의 보드가야(석가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동네)의 국제 사원촌 근처에서 찍은 겁니다. 뗏국물이 줄줄 흐르는 이 꼬마 아가씨의 삶과 릭샤꾼의 일상은 그렇게 큰 차이를 가지지 않습니다. 대체로 한국에서 견디기 힘든 일을 겪은 처자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선택들을 하는데... 대부분은 몇 달만에 자신들이 뭔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된다고 하더군요.

이게 농담이 될 수 없는게,  알라딘의 서평들을 함 보세요. "편하게 인도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하는 분들이 한 둘인가... 마빈 헤리스의 문화인류학적 접근은 '숭상 받는다는 암소'가 사실은 '처절하게 착취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류시화의 판타지 소설은 '현실에선 찾을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묘한 향수로 사람을 꼬득이고 있는건데 말이졉.

이거... 사실 사람들이 인도에 압도되어 그런 겁니다. 그리고 압도된 상태에선... 제대로된 판단들을 거의 하지 못하죠... 보다 좀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면... 영혼이 허한거죠.

이런 판에 <무한도전>과 같은 오락프로그램에서 취할 수 있는 포션이라는게 어떤 것이었을까요? 인도를 비하했다고 하시는 분들, 혹시 <미녀들의 수다>도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도대체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에 한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요?

댓글 4개:

  1. 뒤늦게 무한도전-인도 1편을 봤지. 뭔 난리인가 싶더군. 그대의 지적처럼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는 이들은 무엇을 기대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 내가 놀랐던 것은 그나마 괜찮은 곳에 잘 줄 알았는데, 델리의 호텔이 파하르간즈의 아눕이었던 것에 경악을 했음. 배낭여행자의 전형적인 호텔에 무한도전 멤버들을 집어넣다니.. 다소 지루하고 식상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를 비하했거나 폄훼했단 흔적은 안보였어. 도대체 인도를 비하했다고 하는 것들은 인도에서 뭘 기대한 것일까? 돈다 돌아.



    립서비스 : 몸바이에서 인도 영화 촬영할 때 바라나시(와라느씨)에서 상경(?)한 인도 여배우 지망생을 우리가 머무는 호텔에 재울려고 했더니 기절을 하더군. 그래서 씨불 3성급 호텔에 재웠다는. 우리는 배낭여행자 호텔에 머물면서.. 그런데 무한도전 그들이 아눕호텔이라. 김태호 PD는 그들을 파하르간즈에 버려놨다는 생각이 들었어. 크크.. 대단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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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글고 와라느시 소똥 사진은 사르나트 같은데.. 문제의 여배우 집 근처로 생각되는... "무한도전- 인도, 누가 그들을 씹는가?"란 글을 포스팅할까 하는데, 그대의 글을 인용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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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똠방 - 2008/02/27 11:15
    예... 거기 맞아요. 촬영 마치고 다들 서울로 간 담엔 깨끗한 동네들만 찾아다녔기 땀시롱... 소똥 케이크 찍을 일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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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똠방 - 2008/02/27 11:11
    2MB취임하는 꼴 보면서 기분두 꿀꿀하던 차에 눈 풀린 인도 매냐나 하나 걸려봐라...라는 속셈으로 썼는데 형이 댓글을 달아버렸네요. 낚시 조졌습니다. ㅋㅋ M공장쪽에 이야기를 해보니 전에 우리가 겪었던 문제 있잖아요. 서류 잔뜩 들이밀고도 돈까지 내밀어야 하는 인도의 상황이요. 그런거 하느니... 아눕 가서 장난 친거죠. 장난이 좀 심했던건 거길 '5성급 호텔'이라고 했다는 건데... 뭐... 그 정도야... ^^;; 뭐 비슷한 돈으로 티벳 난민촌쪽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텐데... 전철에서 카메라를 쓸 수 없으니 더 그랬던거 같기두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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