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꽤나 열심히 찾아서 책은 물론 블로그의 글까지 챙겨읽는 우석훈 박사가 최근에 발간한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말을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장경제를 살리겠다"는 각하의 옥성을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뜻으로 알아듣는 시장상인들과 비정규직 강화를 이야기하는 후보에게 "비정규직이 문제라고, 저를 살려주이소"라고 말하는 백수가 각하를 지지하는 사회에서... 단 1분이라는 시간 동안에 이게 말이 안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경제학자는 없다...고 말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는 건... 사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경제"라는 것이 이성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 즉 종교의 세계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우박사는 분석하더군요.
사실 그런게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단 10%만이 뉴타운에 입주할 수 있음에도, 자신들의 생활의 터전을 떠날 수 밖에 없음에도... 뉴타운에 대한 지지가 90%가 넘는 기현상... 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경제정책이라는 것은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성장을 위해 쓰는 정부의 처방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각하의 경제정책이라고 하던 것은 "한미FTA를 하겠다" & "대운하" 밖엔 없었습니다. 앞선 정부의 경제정책도 사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화가 연상될 정도로 뒤죽박죽이었죠. 이 두가지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이해했다고 한다면... 그 지지율이 나왔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2002년이나 2004년과 달리 2008년에 처음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을때... 앞에 두고 있는 정치적 결과를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심판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걱정들을 했었었죠. 그리고 뼛속 깊숙히 박혀있는 정치불신이... 결국은 "해도 안되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냉소가 촛불을 지지하면서도, 각하를 반대하면서도 촛불 자체를 드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외화되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지난 4월에 도법스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도법스님은 대운하가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이 문제가 아니라... 그 터무니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앉힌 우리의 욕망이 문제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솔직히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답이 없다라는 생각도 좀 들었었습니다. 욕망하는 것 밖엔 배운 것이 없는 이 나라가 도대체 무슨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란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5월 2일... 촛불소녀들이 촛불을 드는 것으로 시작한 '변화'는 사실 많습니다.
1. 쌓여있는 미네랄 때문에 타격은 고사하고 기스 하나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중동이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습니다.
2.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협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생협을 이용하는 가구가 100만 가구 단위로 확대되면... 대한민국의 리테일 구조가 상당한 수준에서 바뀌게 됩니다. 다시 소상공인들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만 하더라도 만만찮은 변화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3. 촛불을 들었던 그 소년 소녀들, 특히 고등학생들은 이 정권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투표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다함께라는 쪼금 황당한 그룹에 가장 많이 포섭되었습니다만... 청소년기를 정치단체와 함께 성장한 이 아이들은 결코 어른들이 지금까지 내렸던 황당한 결정들을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대부분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고... 이들은 군대를 거치면서 복종을 내면화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남초가 심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인터넷의 성향 때문이죠. 하지만... 의료팀에서 활동하다가 전경이 찍은 방패에 골반 뼈가 돌아가 자궁을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던 여성들은... 그 와중에도 몸빵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예...여자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쟤네가 바뀔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리고 쟤네들이 철면피라는 사실이나... 귀구멍을 막고 사는 종자들이라는 거... 이제 안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아직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사람들이 위의 변화들을 이끌었던 주 동력들입니다.
키에르 케고르였나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사람이...? 사람의 뇌는 이성적 판단을 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감정에 의해 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금융 부채로 목숨을 끊는 분들의 빚이 사실 1000만원 이하라는 사실... 정말 문제는 당장의 호구지책이 없기 때문에 그러더군요. 정작 1억 이상인 사람들은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고 말입니다.
어떤 도사에게 가서 2MB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2MB는 공업(共業)이니라... 촛불집회는 그 共業을 씻는 것이니 그것이 어찌 쉽게 되겠느냐...?"라는 법어 비슷한 이야길 들었다더군요. ^^;;
저도 찍지 않았"읍"니다만... 이 공업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감히 말하긴... 어렵습니다. 이 황당한 분이 각하자리에 앉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전임자이고, 저 역시 전임자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꽤나 열심히 뛰어다녔었기 때문입니다.
좌절하신다고, 희망을 버리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속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배운녀자"들이 촛불을 놓지 않는 한, 촛불소녀들이 촛불을 놓지 않는 한... 저는 같이 할 겁니다.
부끄럽지만 Samuel S. 님의 블로그에 처음 와봤습니다. 글이 이렇게 재밌는 줄 알았으면 더 자주 올 것 그랬네요. 추천 하나 드리고 갑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답글삭제@Silhouette - 2008/07/07 22:58
답글삭제우잉... 건조하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데요. 과찬이십니당..
정말 이해안되는게 하나 있는데.... '이 황당한 분이 각하자리에 앉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전임자'라는 대목은 뒤에 나오는 자기반성과도 안맞고 근거도 없네....뭐 근거를 대라면 수십만가지를 댈 수도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건 철저히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 아닐까...차라리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조중동이었다'라고 한다면 무리 없었겠지만 '전임자'였다는 것은...앞뒤의 내용의 그 아이들의 선택의 미래를 역추론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답니다... 누구빠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지.
답글삭제시장경제가 재래시장의 경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설득해 낼수 있는 시스템의 문제지, 전임자의 삽질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넘의 삽질보단 시스템이 더 크다는....에효...걍 계속 촛불들자~! [-_-;;]
@안아픈세상 - 2008/07/08 11:43
답글삭제말대루 관점의 차이라고 봐야겠지... 2004년부턴 완전히 돌아섰던 입장이다보니까.
뭐 민주노동당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참여정부 시절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에 별루 동의하지 않았으면서도 2MB 정부가 깨는 형태로 하니까 그걸 참여정부 수준으로 되돌리자고 이야기하는 거 보고 벙 쪘었는데...
이런 저런 삽질들이 겹쳐지면서 봉하마을의 그 아저씨가 심하게 더 과대포장되는 측면이 심히 불편하거든.
안티이명박 카페의 글들이 옛 노사모 양반들이 쓰는 글들이 많아서 짜증나는 것도 한 측면이 있고...
또 성찰과 관련해선 사실 가장 급한게... 21세기 대한민국에 걸맞는 정치인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번 판에서 드러난 문제점인데... 요건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게 많음.
대구에서 저런 일이 생기기도 하는군요... 감사히 잘 봤습니다.
답글삭제저는 솔직히 몹시 지쳐가고 있는데, 힘내야겠습니다.
그래야 저 아이들에게 얼굴을 들 수 있겠죠.
@이삭 - 2008/07/08 21:47
답글삭제옛날 무슨 아이들 영양제 광고중에 심권호보다 운동량이 많은 우리 아이... 라는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