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5일 수요일

Be cool!

그게 아마 1977년이었을 겁니다. 국민학교(그땐 초등학교 아니었음!) 갓 입학한 넘이 1학기도 끝나기 전에 스페인행 비행기를 탔던게 말이죠. 원양어선 기지가 Gran Canaria섬의 Las Plamas에 들어섰지만, 그 지역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습니다. 8살짜리 꼬마가 조국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라고 해봐야... 식당에서 Made in Korea가 찍힌 포크와 나이프 정도였죠.

97년에 캐나다에 있었을땐 동네 꼬맹이들이 "야~ 너네 한국으로 돈 보내고 있다며? 우리가 좀 보태줄까?"라고 동전을 흔드는 걸 C8~!거리면서 쳐다봐야 했고... 영화 <Titanic>을 보면서 그 영화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이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고의 1/10이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버리기 어려웠죠.

1970년대 중동에서 일하던 우리 아버지들이 피땀흘려가며 고생하다가 어쩌다 아시안컵 같은 곳에 한국 축구 대표팀이 왔을때 정말 눈물로 응원하던 그 심정, 그래서 쬐끔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어린 시절을 살았으니까요.

그러다가 몇 년전부턴 '한류'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고 쎔쑹과 엘쥐 제품이 미드에도 슬금슬금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어설픈 한국말들이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도 종종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더군요. 그러고나서부턴 2006년에 싸커월드 게시판에 올라왔던 이 글... 참 뿌뜻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었습니다.

내가 Cool 하게 스위스를 기다리는 이유.
 
   
1) 1986년의 기억

당시엔 대통령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에게 '잡혀간다'고 협박을 들을 시절.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첫경기에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나왔을때 해설자가 말했다.

"우리는 차범근 선수가 있습니다."

차범근 선수는 공을 잡지도 못했다. 우리는 우르르 몰려 다니며 전반에만 3점을 먹었다.
박창선 선수가 골을 넣었을때, 나는 아버지가 담배를 비벼 끄며 하는 말씀을 들었다.

"아르헨티나 넘들을 방심해서 그런거야."

패배주의는 그렇게 심어졌다. 나는 여전히 일본 기업들의 광고판 일색이었던 멕시코시티의 그 경기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대기업이라고 생각했던 삼성이나 현대, 심지어 금성 마저도 광고판이 없었다. 광고판 마저도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2) 1990년의 기억
황보관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멋진 프리킥 골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한껀 해 줄 줄 알았다. 결국 한껀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번에도 말했다.

"조선놈들은 다리가 짧아서 안된다."

그런데 들어갔다. 당시 월드컵 베스트 골 중에 하나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어이없는 3전 전패. 쓸쓸했다.

광고판에서 제일 잘 보이던 것은 "Canon과 JVC"였다.

3) 1994년의 기억

스페인과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니 예비역 형들이 스페인 한명 퇴장 안됬으면 무승부는 어림도 없었을 거라고 했다. 맞는 소리 같았다. 축구는 늘 그랬다. 우리가 무언가 해내면 패배주의를 합리화 시켜주는 그 무엇인가가 항상 존재했다.

4) 1998년의 기억
최용수가 정말 세계적인 스트라이커인줄 알았다. 그런데 한거 아무것도 없었다. 하석주는 세번째 월드컵. 복받은 사람이다. 적어도 한골을 넣지 않았는가. 그런데 브랑코 그 Dog baby가 다리사이 볼 끼워넣고 점프하기 신공을 펼치며 우리 수비진을 유린하면서
"멕시카나 치킨"은 절대로 안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멕시카나는 절대로 안시켜 먹었다.

네덜란드전. 나는 나이키에서 4만원 주고 산 국대 레플리카를 입고 있었다. 가족들은 나에게 진정하라고 했지만 나는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전이 끝났다. 할말이 없었다. 내 귓가엔 "조선놈은 어쩔수 없어..."라는 이명이 윙윙 거렸다. 힝딩크가 오베르마스에게 윙크를 보내는 장면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5) 2006년

2002년은 다 부질없는 '어제내린 눈'이다. 다시시작된 투쟁. 토고한테 지는줄 알았다. 근데 이겼다. 프랑스한테 지는줄 알았다. 근데 비겼다. 현대자동차는 최대 협찬사 중의 하나이고 경기장에서는 유럽애들이 삼성 모바일로 태극기 올리는 퍼포먼스를 사진찍는다.

고작 모여서 태극기나 흔들던 [번외자]들이었던 한국인들이 이제는 개최국 국민들보다 더 극성이다.

월드컵은 이제 우리판이다. 프랑스도 한국이랑 경기하면서 [심판판정]을 운운한다. 많이 컸다. 이것만 해도 기쁘다. 패배주의? 웃기네. 지면 어떠냐. 아르헨티나도 16강 못올라갈때가 많다.

옛날엔 사우디한테 지면 맨날 '오일 달러'이야기 했다. 모깃불 피워놓고 대청마루에서 모기장을 쳐 놓고 수박 먹으며 사우디에게 한골 두골 먹는 대표팀 경기를 본 사람들은 안다. 우리는 애당초 이정도 수준, 즉 세계에서 범용하게 싸울수 있는 수준이 되기위해 안달을 했다고. 이제야 겨우 '한국애들은 전자제품 잘 만들어' 라는 소리를 듣는 수준이지만, 예전엔 '한국 제품은 싸구려' 라는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었다고.

조국? 대한민국? 웃기네, 학교다닐때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는 '반공'이었고 '새마을 운동'이었다. 밤에는 통행금지가 있었고, 경찰이 치마 짧다고 자 들고 다니면서 여자들을 연행하던 이상한 나라였다. 메이지 유신이 일본을 살린 구국의 결의 였다며 '유신체제'를 선포하는 대통령이 있던 이상한 나라였다.

6) 이제 이만하면 우리는 충분히 통해.

우리는 세계에서 말하는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해 투쟁했다. 맨날 한국이랑붙으면 승점 먹고들어가던 나라가 아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한테 3점 정도 먹고 들어가던 '깔아주는 나라"가 아니다. 젠장, 이정도면 어때?

프랑스랑 비기던 날 우리 아버지가 전화했다.

"우리 16강 가겠네?"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귀에 남아있다. '조선놈이... 조선놈이...'

패배주의는 가라. 스위스랑 원없는 경기 한번 해보면 끝이다. 살아남으면 좋은거고, 터미네이트 되면 터미네이트 되자. 썅, 우리가 원했던게 월드컵 우승인가? 우승 후보들도 3전 전승 조별리그 돌파 못하는 판국에 우리가 승점 4점이다. 적어도, 깔아주고 들어가던 예전의 약체는 아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약체'소리, '가난한 조국' 소리 듣기 싫어서 열심히 살았다.
이제 우리는 '강호'소리, '최고 국가' 소리를 들으려고 열심히 산다.

이정도면 됬다. 욕심도 없다. 그저 스위스랑 원없는 경기만 해다오.

어느 월드컵부터 우리가 경기 리드하면서 볼 돌리는 한가한 강호가 되었나?
어느 월드컵부터 우리가 도박사들에게 20위권 배당을 받았나?

이제사 조국은 '열등'을 벗어나 '평범'을 성취했다. 이제 태어날 우리 아들대에는 정말로 엠블럼 위에 '별'좀 달수 있지 않을까?  하기사, 아시안컵 나갈땐 엠블럼 위에 별 두개 달고 나가도 되잖아?

우리 아버지 살아계실때 '별'좀 달면 더 좋은데...

스위스전 끝나고도 아버지한테 전화좀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아버지, 아르헨티나 경기 끝나고 축구 두번 보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우리아버지가 이제 '보통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가끔은 짜증난다고 하더라도... Cool할 수 있다는 걸 한 번씩은 되세길 필요가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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