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4일 월요일

크리미널 마인드 2x17, 외상형 장애에 대한 단상

이 역시 같은 동호회에 작년에 썼던 글입니다. 크마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안 올릴 수가 없더군요. ^^;;


작년 여름에 귀국하기 전까지 거의 1년을 인도와 네팔에서 지냈습니다. 우연찮게 선배의 다큐 작업에 행정으로 참여했던 게 이런 저런 인연으로 확장되어 좀 오래있었죠.

네팔이야 작년 4월 왕이 사실상의 항복선언을 하는 덕에 거의 10년을 끌었던 내전이 정리되어 가던 중이라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인도에선 단 1주일의 차이로 다큐 촬영팀 전체가 북망산 등정을 할뻔 했었습니다.

작년 7월 11일 인도 뭄바이의 suburban기차길을 따라 연쇄적으로 폭탄이 터졌던 그 길을 딱 1주일 전에 정확하게 따라가면서 촬영을 했었거든요. 여러편을 동시에 촬영하느라 폭탄이 터졌던 그 날엔 꼴까따에 있었습니다. 식은 땀 한번 흘리고 나선 그 다음부터 일이 벌어지면 얘네들은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관찰할 수 있었었죠. 인도의 영자 신문과 주간지들을 참 열심히 사서 봤는데요... 그 더운 동네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지금까지도 폭탄테러를 감행한 단체에 대한 윤곽은 불분명합니다만, 용의선상에 바로 올라가버렸던 이들은 LeT를 비롯한 인도 내부의 이슬람 과격단체들이었습니다. 핵실험 한 번씩 교환하고 전쟁 분위기 물씬 풍기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연립정부를 이끌던 국민회의가 목숨 걸고 진행하던 것이 파키스탄과의 긴장완화였는데... 그 분위기 바로 싸해졌었죠. 당시 싱 총리도 외부에서의 적(거의 파키스탄을 겨냥한)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국회에서 꺼내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던 건 파키스탄 쪽의 반응이었습니다. 일이 터지자 마자 가장 먼저 위로 전문을 보냈던 나라들 중에 하나였음에도 대놓고 배후세력 취급을 받으니 정치권이야 외교적 발언들만 하고 있었지만 파키스탄 일반인들의 반응은 바로 냉각되었거든요. "그 일이야 유감이긴 하지만, 너넨 쥐가 죽어도 우리 탓이라고 하지 않냐?" 뭐 이러면서 말이졉.

그런 내용들이 들어간 시사주간지에 실렸던 파키스탄 방문기를 읽다보니 묘하게 우리의 모습이 close up되더군요. 아시다시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인도는 두 나라, 하지만 세 조각으로 나뉩니다. 왼쪽에 파키스탄, 가운데에 인도, 오른쪽에 동파키스탄으로. 그리고 또 다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면선 아예 세 나라로 갈라지죠. 힌두와 무슬림의 오랜 반목이 결정적인 원인이긴 했지만 이렇게 갈라지는 과정에서 양쪽에서 수없이 많은 목숨들이 희생됩니다. 인도 루피화에 항상 모습을 드러내는 간디 영감님의 암살도 이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구요.

내전에 가까운 상황으로 분리되었던 나라여서 그런지 서로의 적대감은 장난이 아닙니다. 인도에서 가장 큰 욕이 "짤루 파키스탄"(파키스탄으로 꺼져~!)일 정도니까요. 둘 다 핵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수준이라는 게 작년에 실험한 북한 핵보다 못한 넘이고, 실제 전투의 경험이라고 해도 카쉬미르와 스리나가르에서 심심찮게 터지는 폭탄을 제외하곤 대포 몇 발 쏘는 수준이긴 합니다만... 전쟁 참가자들의 상당수가 겪는 외상형 스트레스 증후군의 경험에서 좀 비슷한 것들이 발견되더라구요.

1, 2차 세계대전은 물론 베트남전에 참여했던 상당수의 참전군인들이 전쟁에서의 경험 때문에 지독한 사회부적응 상태를 겪게 되죠.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전쟁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경우엔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는 군 경험 이전은 물론 군 이후의 일상적인 사회생활에서도 특정한 이들을 '적'으로, 정확하겐 같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말살해야 할 대상으로 인지시키는 심리적 과정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것으로 겪는 고통이 상대적으로 적은 거죠.

이는 광주에 투입되었던 사병들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특별법으로 구속되고 나서 80년 광주 진압에 나섰던 특전사 사병들이 10년이 넘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으로 후송되었던 사례들이 꽤 많거든요.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이들보다 늦게 발병한 경우가 많았던 것은 자신들이 정당했다고 생각했던 얇은 믿음이 허구였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기 때문인거죠.

하지만 사회 일반이 가진 적대감이라고 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외상형 장애가 은폐되었을 뿐, 언제 다시 드러날지 모르는 상황으로 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한국 사회 전체가 정신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태들이 보이는 이유들 중에 하나가 이게 아닌가란... 그런 생각도 좀 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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