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7일 금요일

네팔 정치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몇 가지2

어제의 포스트에 이어 계속 씁니다.

3) 부족

히말라야의 가장 높은 봉우리 14개 중에서 8개가 있는 나라, 해발 4600미터 밑으로 내려오면 죽어버리는 동물(Yark)가 있는 나라... 그러니 실제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땅은 전체 국토의 16.07%에 불과합니다. 물론 교역이야 계속 있었지만 상당히 독립된 형태로 이런 고지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부족별로 쓰는 언어, 종교는 물론이고 생활수준들까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가 총 2천8백만이 넘는 이 나라의 부족은 몇 개나 될까요? 100개가 넘습니다.

2001년 네팔의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체트리(Chhettri)가 전체 네팔 인구의 15.5%를, 브라만힐(Brahman-Hill)이 12.5%를, 마갈(Magar)이 7%를, 타루(Tharu)가 6.8%, 타망(Tamang)이 5.5%, 네와리(Newar)가 5.4%, 카미(Kami)가 3.9%, 야다브(Yadav)가 3.9%를 차지하고 있었다네요. 이 외에도 분류되지 않는 2.8%와 약 4.2%의 무슬림들, 기타 소수민족이 약 32.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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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꼬마 아가씨, 셀파족입니다. 현지에 살고 있는 한국분과 좀 관계가 있는 셀파족 결혼식에 가서 찍었던거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네팔의 뉴스를 별 생각없이 보고 있으면 쬐끔 황당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죠. 왜냐구요? 다수의 부족어를 하는 아나운서 둘이 똑같은 뉴스를 각각의 부족어로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거든요. ^^;;; 똑같은 화면이 다른 언어로 계속 지나가는 걸 함 상상해보세요.

물론 인도도 마찬가지긴 합니다. 공식언어만 16개다보니 인도 현지인 코디가 인도사람과 말이 안 통하는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을 경험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인도는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지역언어로 진행되는 별도의 채널들이 있습니다. 이게 상대적으로 좁은(네팔도 우리보다 땅덩어리가 큽니다) 지역에서 벌어지니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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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부족분포도를 지도 상으로 표시한 겁니다.

이러한 다양한 부족들의 존재는 풍성한 민속문화를 자랑하게 만들기도 합니다만... 정치, 경제적으로는 갈등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갈등의 배경은 이 부족들이 많아서 그렇다기 보단 별루 없는 나라(2007년 CIA가 추산한 구매력 기준의 GDP는 306억6천만 달러, 일인당 GDP는 1,100달러입니다)가 자원을 골고루 나눠가지기 보단 카트만두 분지 지역이 거의 대부분의 자원을 소모해왔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종교분쟁의 가능성이 감지되면 네팔 용병부대가 투입됩니다. 어느쪽을 편들었다는 시비가 붙어버리면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폭동자체가 확산되어왔으니까요. 반면 96년부터 10년간 내전을 겪는 과정에서 네팔 왕정은 옆 나라의 잔머리 조차 배우질 않았었죠. 경찰의 과잉진압이 부족간 갈등을 촉발시키는 형태로 진행되었었으며 군대가 투입되고서부턴 이게 부족간 학살의 양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문젠 이게 내전이 끝난 지금에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는 거죠.

'집단적 증오를 영속화시키는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제도들을 통한 사회화라는 과정 속에서 다른 집단에 대한 증오와 파괴의 이념이 집단적 기억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허버트 허시가 이야기했던 건데요... 이게 현실 정치에서 응용이 될땐 '파편적 기억'으로만 작용하게 됩니다. 이걸 두고 '기억의 정치'라고 부르죠. 지금 네팔의 정치판을 끌고 있는 7개 정당들이 '연방공화국'으로 국가체제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도 자신들이 가장 강력한 세를 가지고 있는 지역을 포기하지 싫어서 그런건데... 이런 식으로 국가체제까지 바뀌게 된다면 '기억의 정치'는 종료되기 보단 오래 지속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죠. 호남 싹쓸이와 경남 싹쓸이로 나타나는 우리 정치판과 비슷한 양상을 가질테니까요.

아참... 왕정종식과 더불어 없어질 위기에 있는 쿠마리 이야기도 여기서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네요.

미국에 갔다왔다가 잠깐 쫓겨났었던 이야기가 뉴스로 나왔던 적이 있긴 합니다만... 살아있는 여신으로 모셔지는 쿠마리는 네팔 왕가의 수호신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왕정종식과 더불어 없어질 상황에 있죠. 대략 5~8살 정도의 석가족 여자 아이들 중에서 선발되는 이 아이들은 초경이 시작되면 바로 그 직위를 잃게됩니다. 성장기의 아이가 제대로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으로 모셔지다가 어느 순간에 민간인이 되어야 했기에 정상적인 삶을 가지기가 어려웠죠. 또 신으로 모셔졌다는 것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처녀로 그냥 늙어갔었는데... 요즘은 국제구호기구등의 개입으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고들 있다고 합니다.

이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힌두의 탈레주라는 여신이 인간의 몸을 빌어 아름다운 여인의 몸으로 카트만두 왕국에 나타나자 왕은 여신을 극진히 모시며 영원히 자신과 함께 있기를 바랬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신과 장기를 두던 왕이 음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덮치려 들었죠. 분노한 여신은 이승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구요. 뒤늦게 후회한 왕은 계속 기도를 했고, 그의 진심을 이해한 여신은 그에게 다시 나타나는 대신 초경을 겪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를 선택해 자신의 분신으로 섬기기를 명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왕은 여신이 제시한 조건에 맞는 여자 아이를 뽑아서 여신으로 섬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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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가 되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몸은 보리수 같아야 하고 허벅지는 사슴과 같고, 눈꺼풀은 소와 같아야 하며 목은 고등 같아야 한답니다. 여기에 소, 닭, 돼지, 양 등의 머리가 피 냄새를 풍기는, 그것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 혼자서 하루를 지내야 신으로 인정받는다네요. 위의 사진은 이 쿠마리가 추는 춤인데요... 전문 댄서가 추는 걸 찍은 겁니다. 뒤에 히말이 어렴풋이 보이죠.

4) 군대

네팔의 군대, 밀리터리쪽에 쬐끔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연상되는 부대가 하나 있습니다. 영국의Gurkha용병대 말입니다. 영국군이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훈장을 달고 있는 이 부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분의 글로 대체하겠습니다. 작년부턴 여자들에게도 문을 열었다는 케나다 Telegraph의 기사도 뭐 참고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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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명성이 있기에 수많은 나라에서 Gurkha용병대 출신들을 경비와 관련된 분야에서 최고로 우대해주죠. 싱가폴의 경우엔 주요시설물의 경비를 이들에게 맡기고 있을 정돕니다(위의 사진). 이외에 네팔군은 자국에 UN감시단이 들어와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병력들을 UN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하고 있는 나라들 중에 하나죠. 이들이 네팔로 송금하는 돈이 네팔 경제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근데 왜 얘네들이 지금의 네팔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하냐구요? 지금의 네팔 상황을 다른 나라들로 대입해 놓고 보시면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정도로 나라가 혼란스럽다고 한다면... 보통 이런 내용이 방송에 나오게 되잖아요... "은연자중하던 군부는...국가의 질서회복을 위해...어쩌구 저쩌구..."

실제로 2007년 트리듀번 국제공항 근처에서 살던 무렵, 네팔 중산층들과 몇 번 술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지금의 네팔에서 민주주의는 사치품"이라는 말들을 꽤나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87년 이후 억눌려졌던 모든 요구사항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던 우리나라처럼 요구사항들은 많아지고 있습니다만... 문젠 이걸 교통정리할 정치가 안습이라는 겁니다. 특히 마오이스트들의 행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2007년 초, 네팔의 모든 상점들이 철시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구요? 정당대회를 열어야 하니 기부금 받아야 한다고 네팔 상의 의장을 찾아가 말을 안 들으니까 두들겨 팼거든요. 이에 항의하는 사장님들이 문을 걸어버린거죠. 어제의 포스팅 마지막에 링크 걸어놓은 프레시안 기사에서 보시듯, 제대로된 나라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 보단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까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이쯤되면 군사쿠테타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특히 네팔의 군부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집단은 네팔이 절대왕정체제로 들어가기 전까지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하던 '라나가문'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출동'을 결심한다면 군사쿠테타가 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네팔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중론은 이것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쪽입니다. 군사 쿠테타의 전제도 민심이 그만큼 받춰져야 하는데(우리의 5.16처럼), 네팔의 경우엔 너무 많은 피를 흘렸으며 군 자체에 대한 신뢰도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금 이 혼란한 상황을 한꺼번에 바로 잡을 수 있는 집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 상황이 꽤나 길어질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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