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5일 수요일

유랑하는 연인들, 첨밀밀

한 시대를 열었던 매체의 글쟁이에서 컨텐츠 기획자로, 마케팅 기획으로... 그러다가 다큐멘터리 팀의 행정을 하고, 지금은 사회단체의 간사를, 좀 있으면 꽤 큰 사업을 중계하는 에이전트를 하게 되네요. 이력서 치곤 참 난잡하기 그지 없는 셈입니다.

가끔 불안 때문에 제 자신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았던게... 컨턴츠를 가지고 있는 업체에서 기획을 했던게 아니라 그걸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제 서비스 시작하는 넘을 마케팅하러 다녔으며... 개발도 되지 않은 ASP(Application Servie Provider, 우리말로 프로그램 임대업)를 팔러 다니기도 했었죠.

캐나다에서 만나 지금까지 계속 메신저나 메일을 주고 받고 있는 대만친구는 저의 이런 삶의 궤적을 두고 流浪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 친구랑 그 이야기를 하던 즈음에 봤던 영화가 첨밀밀이었는데... 네팔에서 그 영화평 썼었던게 있었는데...

그거나 함 올려보렵니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은 참 웃겨서 시간이 일정 이상 흘러버리면 '본 것'과 '못 본 것'의 간극까지 섞어버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람 얼굴에 대한 기억은 그나마 이유라도 있지요. 사람들이 얼굴을 기억하는 방법은 얼굴의 특징적인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나머지 부분들은 대충 두리뭉실한 형태로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인종일 경우엔 얼굴 특징들 자체가 '섞이는 바람'에 다른 특징들만으로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게 됩니다.
 
그러나 좀 더 골때리는 경우는 우짜다가 '보지 못했던 영화'들도 가끔은 '본 영화'리스트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본 영화'들이 '못 본 영화'의 리스트에서 헤매는 경우들입니다. '못 본 영화'라고 해서 DVD를 돌렸을 때 영화 줄거리가 기억나는 경우라면 그나마 낫지요... 못 본 영화였는데, 지금까지 본 줄 알고 있었다가 줄거리는 물론이고 장면 하나 기억나는 것이 없더라는 걸 느끼게 되면 '뇌의 노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8개월 가깝게 끊었다고 하더라도 거의 20년 가깝게 피운 담배와 그 즈음부터 지금까지 연속선에 있는 알콜 섭취등에 대해 절라리 고민하게 되는거죠. ㅠㅠ
 
<첨밀밀>도 이 경우에 해당되는 영화였습니다(이런 영화가 몇 편이냐고 물어보시면 저두 할말 없심다. 그거 기억하고 있으면 이런 기억력 버그 벌써 잡았죠. ㅠㅠ). 아마 등려군의 노래가 워낙 익숙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중국 사람들이 '한 대륙'으로라면 몰라도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일본이나 우리에 비해 훨씬 그 '농도'가 떨어진다는 사례로 이 영화가 자주 들먹여져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당대 최고의 홍콩 배우들이었던 장만옥과 여명이 워낙 익숙한 배우들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요...
 
삼시 세끼 꼬박 챙겨먹고 타멜 거리 밖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은 운동량을 두 달 가깝게 유지한 결과, 나날히 부풀어 오르고 있는 제 배와 비슷한 속도로 부풀러 오르고 있는 네팔 카트만두 분지의 보름달을 보면서 왠지... 이 영화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돌렸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 영화가 개봉한지 1년 후, 전 Canada Vancouver에 둥지를 틀겠다고 덤비고 있었습니다. 그때 만난 여러 사람들 중에서 그래도 때 되면 서로 인사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한동안 일용할 양식을 공급했던 넘도 있고(이 친구, 자기가 반대한 일을 추진한 사람들은 도망간 상태에서 뒷 수습하느라 고생중입니다), 대체로 영어 실력이 backslide할 즈음이면 영문 타이핑 속도를 이빠이 높여주는 몇몇 외국 친구들도 있지요. 그 중에 한 명인 대만 친구가 네팔 카트만두에서 추석 보내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더니 제 가슴에 이렇게 못을 박더군요.
 
"i am not sue if u can read the words. '流浪'.  i think that is Ur destiny"
 
무척 더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ㅠㅜ
 
그런데...
 
저 말이 이 영화와 묘하게 매칭되더군요. "대륙 사람들이 홍콩으로 넘어오고 있었을 때, 홍콩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떠나고 있었다."는 이야기나 "이젠 고향으로 가야 돈 벌어"라고 뉴욕에서 불법체류 신분을 가까스로 갱신한 장만옥에게 이야기하던 관광객의 말이나... 제 기억으론 <첨밀밀> 역시 홍콩이 반환되기 전, 홍콩 사람들 스스로가 불안감을 많이 내보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영화였던 까닭에 영화 곳곳에 박혀 있는 비유나 상징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들을 꽤나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사례가 '고향의 여자' = '중국본토', '돈 벌기에 정신 없는 여자' = '현대 홍콩인, 혹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홍콩인' 뭐 이런 식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케릭터를 해석하는 것이었죠. 특히 뉴욕에서 두 연인이 만난다는 것 자체를 '본토놈들 믿지 말고 이민가라'라고 선동하는 내용이라고 해석들을 많이 했었던 것 같구요. 뭐... 한때 아시아의 금융기지였던 홍콩의 쇠락(이른바 '본토'로 많이 넘어간 상태죠)을 보는 입장에선 그리 틀리지 않았던 예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유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인연을 다시 찾아가게 된다는 건 아무래도 진가신 감독의 바램에서나 가능한게 아닐까요?

ps. 등려군이 부른 첨밀밀을 동영상으로 붙입니다.

[Flash]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63D05060046B5311E2F4539917A6A68D3809&outKey=72ffe9815f21a99d0823b1ea7797346335b6a05c0671f62e3f0a6d3f8571e3f0f64a65baa58c52512a6c08be851aa64b

댓글 2개:

  1. ◆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도 본 사람인지 아닌지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황당한 때가 있더라고요. 다행히 사람에 대한 기억은 머리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몸으로도 일정부분 역활 분담이 됩디다. 때론, 기억되는 것이 더 찐하고 오래가기도 합디다.한동안 잘 듣던 파일을 잃은 지 꽤 됩니다. 그래서 노래 챙겼습니다.

    답글삭제
  2. @maejoji - 2009/01/11 10:08
    중국어와 일어를 하면 제가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텐데... 중국어는 이상하게 안 땡기더군요. ㅎㅎ 잘 챙기셨다니 저야 고마울 뿐입니다. ㅋㅋ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