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3일동안 이걸 쓰게 되네요. 순서는 이게 첫 번째고, 이게 두 번째이며... 이 글은 마지막입니다.
5) 터져나오는 요구 & 부정부패 & 리더십의 부재
네팔에 있었을 때 이전의 블로그에 마오들의 대장인 프라찬다를 두고 '네팔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 기업가'라고 비꼬았던 적이 있습니다. 학교 선배랑 그걸 가지고 약간의 마찰이 있었었죠. 뭐 최근의 제 입장은 인민의 복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좌파는 좌파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 다툼이 약간은 격해졌었죠.
2006년 2월, BBC와의 인터뷰에서 프라찬다는 네팔의 3/4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트만두로 진격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했었습니다. 2001년경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군사적 지원, 그리고 인도와 네팔이 맺고 있는 군사조약, 절대로 '마오주의자'라고 안 부르고 '반군'이라고만 부르는 중국 등이 본격적으로 개입할 빌미를 주면 빈약한 무장을 하고 있는(그 흔한 AK-47조차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죠) 그들의 입장에선 상황 자체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나름 현실주의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었는데요...
83석의 의석을 배정받고 연정에까지 참여했었음에도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인민전쟁을 선포했던 당시의 40개 조항을 어떻게 해서든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결코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충실하면 충실할 수록... 지지세는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죠. 40개 조항이 이념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네팔 사람들이 보기에 그게 당장의 자기 삶을 향상시켜줄 것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나라가 가장 열악한 부분은 무엇일 것 같습니까? 청빈, 안빈낙도 등등의 멋있는 말이 많지만 '나라'가 가난할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프라입니다. 물, 전기, 가스 등등의...
어떤 면에서 보자면 네팔은 이런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서 나름 나쁘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력발전으로 대부분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전기의 상당부분을 인도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2.5백만MWh를 생산해 그 중에서 1/20을 인도로 수출하죠. 그리곤 다시 그 두 배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언뜻보면 삽질 같아보이는 이 짓을 반복하는 이유는 갈수기냐 몬순이냐에 따라 유량의 차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기 에너지는 대규모로 저장할 수 없잖아요? 박형진 중령이 가족들에게 보낸 이멜에서 최근엔 하루 8시간씩 정전이라고 썼었다죠. 지금이 갈수기이기 때문에 그렇고, 유량이 풍부한 몬순을 좀 지나면 일주일에 4시간 정도로 정전시간은 짧아집니다.
그런데 몬순을 지나면 일주일에 4시간 정도로 줄어든다는 것... 그러니까 유량자체를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러니 '대규모 댐'이 여러가지면에서 해답이 될 수 있을텐데요... 이건 이 댐이 들어서야 하는 지역의 부족의 이해와 카스트 갈등, 그리고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카스트 제도도 여기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죠. 교육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너희들의 그런 삶은 만세의 업(Karma)가 쌓여서 그런 것"이라고 종교적으로 묶여 있으면 답 없거든요.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정치형태중에서 민주주의가 아직도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사람들의 요구를 전면화시켜 이것들을 공동으로 해결한다는 것이죠. 이게 작동되려면 자신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게 교육수준이 지나치게 낮거나,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을 경우 갈등은 증폭되기만 합니다. 이 이야길 왜 하냐구요?
1990년까지 절대왕정이 이어져오면서 뭔가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골로간다는 걸 의미했었죠. 그리고도 우여곡절 끝에 2006년에 들어와서야 '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게 교통정리가 되려면 '등가가치'를 가지는 것들끼리 교환이 되어야 하는데... 요게 쉽지가 않거든요.
2001년 센서스에 따르면 문맹율이 51.4%에 농업종사자가 전체 노동인구인 1천1백만중에서 76%에 달합니다. 네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쪽 지역의 끔찍하게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게 나오는 것도 사실은 이들 대부분이 당장의 끼니 걱정이외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 조차 없으며, 교육율이 낮아 자신들의 처지를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댐' 건설이 자신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향상시켜줄 수도 있다는 '미래'보다는 당장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생계기반이 무너진다는 현실 밖엔 받아들일 수 있는게 없죠.
이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이 바로 Tarai입니다. 인도에서 네팔 사람들은 별루 사람 대우 못받습니다. 비하르주 출신들과 함께 대부분이 막일에 종사하니까요. 실업률이 44%에 달하는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인도로 일하러가는데... 경찰이 심심하다고 폭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거든요(이 때문에 힌디를 구사하는 한국인들이 수난을 겪기도 합니다. 걔네들 눈엔 똑같은 몽골리안이니까요).
이 지역의 농민들이죠. 몽골리안이라기 보단 아리안에 좀 더 가깝습니다.
이게 쌓이면 내부에서 비슷한 이들이 수난을 겪게 되죠. 인도계가 대다수인 Tarai지역이 문제가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죠. 그동안 상당한 수준의 차별을 겪어왔기 때문에 분리독립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네팔에서도 이 지역은 자원이 가장 많은 지역이며 동시에 교통요충지라는 것이 갈등을 격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원래 암것도 없는 동네엔 사람들이 관심이 없지만 뭔가가 많은 동네는 그렇지 않은 법이잖아요.
코끼리 타고 코뿔소 구경하는 것으로 유명한 치트원과 석가모니께서 태어나신 룸비니가 바로 이 동네입니다. 야크보다 수익성이 좋아 염소로 가축을 바꾼 것 때문에 생태계 교란이 벌어지고 있는 산악지역과 비교하자면 이 동네는 천국이나 다름없죠. 일년 내내 농사가 가능한 지역이며 네팔의 유일한 시멘트 생산지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네팔의 인도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60%가 넘는데... 인도와 네팔을 잇는 도로가 여기거든요.
이들이 그동안 핍박받았던 것을 만회해야 한다고... 분리독립운동을 벌이면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수단은 길을 막아버리는 겁니다. 네팔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길이 막힌다는 것은 룸비니나 치트원으로 가는 길이 조금 길어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지만... 네팔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길이 막힌다는 것은 석유, 가스등과 같이 생활에 필수적인 에너지 공급이 차단된다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된 유리조차 수입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제3자의 눈으로 보자면 이미 '연방공화국'으로 가는 것에 동의한 상태이기에 이들의 '분리독립'은 타협의 여지가 많을 것 같음에도... 이게 해결되고 있지 않죠. 가장 큰 문제는 한때 네팔 전체의 3/4에 달하는 면적을 실질적으로 지배했었던 마오이스트들이 정치력을 발휘해 이들을 통합시키는 쪽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40개조항을 구현하는 쪽에 훨씬 더 열성이라... 국가통합보다는 이해의 충돌로 국가 전체를 끌고 가고 있다는 겁니다.
로멘스 영화에 불과했지만... Aaron Solkin이 초창기에 각본을 썼던 <대통령의 연인>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지도력에 목마른 국민들은 너무 목이 마른 나머지 모래를 물인 줄 알고 마시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은 그것이 물이라고 생각해 마시고 있는 것일세"
이런 네팔의 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동북아시아의 한 섬나라가 자동으로 연상되는 건... 제가 아마 그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뭐 대충 이 다섯 가지 키워드가 지금 네팔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는 기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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