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스트(Caste)
"첫째, 인도 사회가 지금까지 존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 국민의 화합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반드시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며 계급간의 통혼이 허락되어야 하겠는가?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은 대소변을 보는 것 만큼이나 더러운 짓이 아닌가. 대소변을 볼 때 은밀한 곳을 찾듯이, 음식을 먹고 마실 때에도 은밀한 곳을 찾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셋째, 카스트 제도를 철폐하고 서구적인 사회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인도인들이 카스트 제도의 핵심인 직종 세습의 원칙을 포기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직종 세습의 원칙은 영원한 원칙이며, 그 원칙을 바꾸는 것은 무질서를 조장할 뿐이다. 하루 아침에 브라만이 수드라가 되고 수드라가 브라만이 되는 혼돈 상태를 한 번 상상해보라."
뭔 또라이 같은 소리냐구요? 글쎄요? 이 말씀을 하신 분은 바로 위대한 영혼 Mohandas Karamchand Gandhi(1869.10.2~1948.1.30)입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들 중에 한 분인 이 분, 힌두경전들 중에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에 주석을 달고 강의를 했을 정도로 독실한 힌두교도였다는 사실을 알면 뭐 그렇게 놀랄 사실은 아닙니다.
그런데 네팔 이야기를 하면서 왜 카스트 이야길 하냐구요? 카스트는 힌두교에만 있는 겁니다. 네팔 인구의 80.6%가 힌두교도이며 2006년까진 '국교'로 힌두교를 지정하고 있었던 나라니까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죠.
인도보다 더 한 상황일 수 밖에 없는 건, 저런 말을 하던 간디가 카스트 문제에 있어서 생각을 아예 바꾸게 만들었던 암베트카르(Bhimrao Ramji Ambedkar,1891.4.14~1956.12.6) 와 같은 불가촉천민 출신이 네팔 정치사엔 등장하지 않습니다.
암베드카르는 인도의 초대 법무부 장관이며 동시에 인도 헌법의 제정자였던 만큼, 카스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헌법에 사회의 각 부분에 불가촉천민을 위한 자리를 '할당'하도록 한 Reservation System을 헌법에 도입해버렸기 때문이죠.
사실 이 사람이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도 헌정의 기초를 만들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도 실제로 바꿨기 때문입니다. 나렌드라 자다브, 인도중앙은행에서 수석경제보좌관으로 근무했으며 푸네 대학의 총장인 그의 부모님과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죠. 작년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2007년 인문사회과학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신도 버린 사람들>은 사실 그의 부모님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Baba Saheb(Sahib로도 씀)이라고 불렀던 사람이 바로 암베드카르니까요. 인도어로 바바란 '아버지'를, 사히브는 'Sir'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아버님'으로 불렸던 셈입니다.
"우리의 헌법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헌법은 유연성이 있을 뿐더러 평시, 전시를 막론하고 인도 국민을 하나로 단합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나고 있습니다. 만약에 새로이 제정된 헌법 아래서 국정이 난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헌법이 나빠서가 아니라 헌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싸웠던 암베르카르 조차 죽기 2달 전에 10만명의 불가촉천민들과 함께 불교로 개종합니다. Reserve System으로 카스트 제도를 어떻게 해서든 넘어가고자 했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불가촉 천민에게 '할당된 숫자'조차도 체우지 못하는 상태로 이 제도가 운용될 수 있도록 집행에의 단서조항들을 꾸준히 추가시켜왔으니까요.
이런 위대한 인물 조차 없었던 네팔의 상황. 짐작하실 수 있으실랑가요?
2) Maoism
붉은 중국을 만들었던 장본인, 그리고 권력을 놓기 싫어 자기 마눌과 부하들을 시켜 중국을 10년동안 문화대동란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 이 아저씨... 지금 중국 공산당 지도부들의 입장에선 참 이중적인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죠. 뭐 관운장과 같이 조상신으로 모셔진다니 문화혁명 10년의 아수라장도 바꾸지 못한 것들이 꽤 많은 셈입니다. 암튼... 중국에선 조상신 정도의 취급 정도를 받고 있는 이 아저씨가... 네팔에서 소혼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려면... 다시 인도로 가야 합니다. ^^;;
해발 2100미터, 시원하기 그지 없지만 함 올라가려면 7시간(70키로밖엔 안되는 거리를!)이 걸리는 Darjeeling. 요기서 네팔로 건너가라면 필히 지나갈 수 밖에 없는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Nakshalbari라는.
1960년대말, 이 마을에서 대규모의 소작쟁의가 발생됩니다. 그리고 이 쟁의를 지원하기 위해 Kolkata대학을 비롯한 일군의 지식인들이 참여하지만... 처절하게 진압당하고 말죠. 그리고 벌어졌던 일은 1980년 5월 29만원 논네를 비롯한 일군의 군발스들이 정권을 장악하겠다고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어버렸을때 우리나라 대학에서 벌어졌던 것과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뭔가 이념이 필요하다... 는 것이었죠.
그때 그들이 선택했던 것이 바로 중국식 사회주의, 바로 마오이즘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왜 마오주의 반군들을 Naxal이라고 부르는지... 이해되시나요? ^^;; 이들이 마오주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중국혁명 당시의 중국 농민들의 상황과 인도 농민들의 처지가 그렇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확한 곡물의 80%를 지주에게 가져다줘야 하기에 최대한 땅을 많이 빌릴 수 밖에 없고... 경작지는 개인이 경작할 범위를 넘어가니 불가촉천민들을 농업노동자로 쓰는 현실...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들의 삶이라는게... 끔찍하죠.
문젠 얘네들이 晝戰夜讀하며 마오주의를 학습하기 시작한 바로 그 즈음에 이들의 총을 쥐었던 West Bengal주의 정권이 공산당으로 넘어갔고... 정권을 잡자마자 이들은 토지개혁부터 진행하게 됩니다. 이 동네에선 문제가 해결되었던 셈이죠.
낫과 망치, 그리고 West Bengal의 상징인 호랭이... 바로 West Bengal 공산당 깃발입니다.
하지만 인도 다른 지역의 농민들의 처지는 별반 달라질게 없었죠. 그래서 West Bengal의 옆 주, 동시에 가난한 인도에서도 끔찍하게 가난한 Bihar지역으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Naxal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얘네들은 두 그룹입니다. 하나는 그룹은 MCC(Maoist Communism Centre, 마오이스트 공산주의 센터)로, 지금까지 설명한 그 그룹이고... 또 하나는 1980년대 고등학교 선생이 콘다팔리 시타라마이아흐가 세운 PWG(People's War Group, 인민의 전쟁 그룹)이죠.
지금부턴 단상 위의 이 아저씨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Prachanda. 네팔 마오주의자들의 리더이며 동시에 네팔인민해방군(People's Liberation Army)의 총사령관.
네팔은 1990년까지 절대왕정이었습니다. 20세기에 절대왕권이라니 뭔 시대착오...? 라고 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역사를 함 보죠...
-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
- 미국과 소련의 이해에 따라 분리통치. 한쪽엔 친미정권, 다른쪽엔 친소정권 수립
- 내전 발발. 주변 나라들의 참여로 확전. 최소 450만명에 달하는 사상자 발생.
- 휴전상태. 군사적 긴장상태 유지.
- 민주화 요구 시위 발발.
- 식민지시절 점령국의 군인이었던 자가 군사쿠데타로 정권 탈취
- 18년간 장기 집권. 종신집권을 위해 헌법 수정.
- 대통령, 측근에 의해 총격 사망.
- 군사쿠데타 발발.
- 민주화를 요구하는 한 도시를 포위 공격하여 민간인 학살
- 헌법 수정하여 체육관에서 대통령 당선
-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국 규모의 시위 발생
- 집권세력의 제 2인자를 내세워 대통령 직선제 요구 수용하고 재집권
- 2개 야당과의 합당을 통해 거대여당 형성
- 변절한 야당지도자가 대권 승계
- 외환위기로 IMF 관리체제
친구가 정리한 대한민국사입니다. 뭐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들과 별루 다를 것이 없는 히스토리졉. 실제 헌법 자체가 민주주의적인 꼬라지가 된게 1987년 10월에 개정된 것이었으니까... 이 나라를 두고 '후진국' 어쩌구 하긴 좀 멋적을 수 밖엔 없습니다.
암튼... 1990년에 다당제를 도입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게 되었는데요... 이때 생겼던 정당들이 통일공산당(CPN-UML), 네팔국민회의, 좌파전선, 네팔농민노동자당, 인민전선, 네팔스드브하바나당... 등이었습니다.
단상위의 저 아저씨. 원래는 공산당 소속이었습니다. 1986년엔 서기장의 자리에까지 오르죠. 그러나 1990년, 왕이 일종의 유화조치를 취하던 그 즈음에 전면적으로 비합법 투쟁의 깃발을 들어올리고... 1996년 2월 4일. 40개 요구사항을 발표하며 이를 즉각 수락하지 않는다면 바로 '인민전쟁'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합니다. 비합법활동을 하던 즈음부터... 바로 위의 인도 마오이스트들과 연결이 되죠.
요구사항들은 토지개혁, 군주제의 완전 폐지, 공화정 실시, 인도와의 군사협정 폐지(네팔에 뭔 일이 터지면 인도군은 인도군 총사령관의 판단에 따라 바로 군대를 투입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적 경제개혁, 다국적 기업 반대... 등등이었습니다.
그때 네팔 정부의 반응은...?
"너넨 또 누구니?" 였습니다. ㅋㅋ
그 후, 이들은 인민전쟁을 선포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아주 골아픈 사태로 연결되게 됩니다.
네팔 정부는 이들을 정치세력으로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경찰을 투입했는데... 위에서의 독촉이 심해지니까 과잉진압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민심이 마오반군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이게 혼란을 거듭하던 중... 미국이 개입하게 됩니다.
9.11 이후 전세계적인 반테러 전쟁을 선포한 부시는 네팔 반군 역시 테러리스트로 정의합니다. 그러곤 네팔정부에 군사 지원을 해주죠. 이미 군이 투입되어 있던 상태에서 이러한 미국의 지원은 사태를 엄청나게 악화시키게 됩니다. 영국군이 2차 대전 당시 개발해 거의 80년대까지 사용했던 스탠 기관단총과 역시 2차 대전 당시에나 썼을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네팔군에게 성능 좋은 미제 무기는 대량학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거든요.
이 결과...? 헌정중단이 심심찮게 벌어지다가...2005년 말에 계엄이 선포되었지만 한번 잃은 민심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죠. 결국 2006년 4월 23일 왕이 절대왕정 폐지와 제헌의회 소집을 약속하고 4월 26일 마오 반군과 왕정은 휴전을 결의하게 됩니다.
그 이후... 엔 제헌의회를 만들기 위해 임시국회를 소집했죠. 총 329개 의석 중에서 마오이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의석은 83석입니다. 이후 네팔 마오이스트들의 활약을 알고 싶으시다면 프레시안의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쫌 쓰겠다고 했던 것이 걷잡을 수 없이 길어지는군요. 아무래도 여기서 정리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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