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구속을 둘러싼 논쟁, 사실 심히 맘에 안듭니다. 개입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전 말을 해도 말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대들에겐 귀찮아서 말도 안합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왜곡되는 것은 물론이고 '니 많이 알아서 좋겠다'는 식의 대응들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그 상대에겐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리바이용으로는 하나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편, 니네편으로 나눠서 본다치더라도 좀 웃기는 부분들이 많아서 말이졉. 솔직히 이 이야기만 하고 각하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접을 생각입니다. 거하게 말아먹고 계시다는거야 초딩들도 아는 상식의 수준에 들어갔는데... 그거 뭐하러 이야기합니까. 차라리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훨씬 더 영양가 있는 행위가 될 겁니다.
더군다나 소통능력 장애는 청와대의 그 분만 있는게 아니거든요. '믿음의 세계관'을 가진 분들은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하나씩 좀 따져보겠습니다.
1. 인터넷은 익명의 공간이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명제지만, 근본적으로 틀린 명제되겠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데이터 패킷들이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알면 익명 운운할 수 없습니다. 접속을 하게 되는 순간에 한 ip주소를 잡게 되고, 어떤 사이트든 ip주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의 접속은 기본적으로 '실 전화'와 비슷할 수 밖에 없다구요. 이해가 안된다? 네이버 지도 서비스를 들어가 보세요. 해외에서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로 자신이 접속하는 지역의 지도가 먼저 뜨게 됩니다. 이게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될 것 같은가요?
더군다나 우리나라 인터넷 사용자들의 대부분은 포털을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들은 모두 실명 가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터무니없는 이야기죠. 굳이 차이라고 한다면 매체를 통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알려진 사람'이지만 그게 블로그든 게시판이든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밖엔 없습니다.
그러니 '익명성을 활용한 어쩌구'라고 이야기하는 글이 있다면 바로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들을 가치가 상당히 낮으니까요.
2. 인터넷과 표현의 자유
역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한 부분입니다. 인터넷이라고 해서 무제한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은 아닙니다. 중국의 경우가 대표적이죠. 통제하겠다고 하면 충분히 통제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 워낙 놀랍다 보니... 속도 차이도 별루 없습니다.
사실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가 허용하는 자유의 수준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어느 사회든 이건... 무한정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법원이 야후 경매에 올라간 나치 상징물을 두고 내렸던 판결의 사례처럼 처벌이나 규제의 범위는 그 나라의 일반법에 종속됩니다.
특히 야후와 같이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하는 포털의 경우엔 미러링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운영서버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죠. 다국적 포털에서도 이러는 판국에...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포털이 사용자들의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는 나라는 어떻겠어요? 이런 판에 인터넷을 위한 특별법을 만든다는 거...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3. 학력과 직업
운도 지지리 없었던 저는 IMF터지던 그 해에 캐나다에 있었습니다. 학교 댕길때 워낙에 공부는 안하고 전경들과 쌈박질하느라 바빴던게 후회가 되었고,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거든요. 그때 몇 달간 있으면서 캐나다가 부러웠던 것은 몇 가지 정도였습다. 재미있는 것은 10여년 사이에 제가 캐나다에서 부러워했던 것들중 많은 부분은 이미 우리것이 되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공도서관입니다. 이 공공도서관들이 출판사를 상대로 책 공짜로 삥 뜯어오는 구시대적 행태는 지적받아 마땅합니다만... 요즘 어지간한 서울시내 공공도서관들도 장서량이 꽤 됩니다. 물론 10여년전엔 서울대 예산과 동경대 도서관의 도서구입비가 비슷한 수준이었던 만큼, 쫓아가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만...
물론 비전공자들이 공공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읽으면서 뭘 배우는데는 전공자보다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안이든 하나의 입장만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죠. 다양한 입장들이 있을 수 있는데다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이른바 '정통적 시각'이기 보다는 야매라고 할 수 있는 '음모론'과 관련된 책들도 꽤 많이 비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가려내면서 읽는다는 것, 뭐 그렇게 쉬운게 아니죠. 더군다나 인터넷으로는 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좀 독특한 형태이긴 하지만, 이게 특정금융집단의 소유라는 음모론으로 해설하는 글들을 찾기가 왜 미국의 연준이 그런 형태로 만들어졌느냐를 찾기보다 더 쉽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특히 서울의 공공도서관들의 장서량으로 놓고보면... 한 사안을 비전문가가 혼자서 학습해서 정리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됩니다. 더군다나 최근엔 강연회들도 많이 열리고 있기 때문에 뭘 배워야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공간들이 꽤 됩니다.
그러니 30대의 전문대를 졸업한 백수가 그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논쟁은 사실 좀 무의미한거죠. 나름 평생학습시스템들이 갖춰지고 있다는 걸 거꾸로 좋아해야 할 일이니까요. 이런 건 더 장려되어야 할 부분 아닌가요?
4. 신뢰와 권위
누가봐도 구속영장을 발부한 검찰이나 그걸 내준 법원이나 오바질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 정책 당국자의 발언보다 한 네티즌의 발언이 시장에서 더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는 건... 그건 그만큼 정책 당국자들이 삽질을 했다는 증명 밖엔 안되거든요?
국가권력이 가지는 권위가 땅바닥이 아니라 지표면 밑으로 들어갔다는 것과 한 개인의 발언이 고도 수천 미터에 있게 된 상황이... 그게 그 개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아뉘... 블로거들이 하루에 포스팅하는 글이 몇 개이며, 다음의 아고라와 같은 게시판에 하루에 올라가는 글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사막에서 바늘 하나 찾기 보다 어렵다구요. 그런 상황에서 "한 개인의 글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면 그 책임소재는 누구에게 따져야 할까요?
사실 전 이 때문에 사법부나 조중동, 그리고 한나라당의 몇몇 국회의원들이 이해가 안됩니다. 자살골 넣고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그동안 자살골들을 넣고도 골 세레모니를 벌이는걸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은 없습니다만.
아마 말씀하시고 싶었던 내용들은 '늬들은 30대 전문대졸 백수에게 낚였어. 그러니 권위있는 우리말이나 제대로 들어'인거 같습니다만... 그 권위를 스스로 망가트리신지 좀 되거든요. 특히 프랑스 파리 특파원 출신의 기자가 불어로 '만우절'인 기자이름으로 쓴 기사에 낚이고, 물리법칙을 넘어서는 글을 쓰고서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중앙일보는 특히 좀 자중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뭐 여전히 미국의 슈퍼마켓 주간지에나 나오는 이야기를 '외신'으로 다루는 조선일보도 마찬가지구요.
일전에도 West Wing의 한 장면을 인용했었습니다만... 백악관 비서실차장이 기름 엄청 잡아먹는 SUV로 하이브리드차를 받은 사건이 정치 가십 블로그에 오르고, 기자들이 이에 대해 여러가지 방향으로 지적하자 공보실장은 이렇게 잘라버립니다. '그건 상징의 세계이고, 백악관은 상징의 세계에 대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이졉.
이렇게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좀 생각해보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5. 대중의 선택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시절부터 전 김진명씨를 소설가라고 보질 않았습니다. 소설의 기본 문법 자체도 못 배운 분이 참 안습인걸 썼었는데두 그게 대박이 난 사회가 웃기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뭐 어디가나 마찬가지긴 합니다. 한동안 메신저에 <악마는 프라다를 뭐뭐뭐 한다>는 페러디가 유행하게 만들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경우만 하더라도 평론가들은 '기초 철자법'과 '문법'도 못 지킨 책이라고 혹평을 가했으니까요.
폴 포츠의 경우에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이 아저씨의 노래는 제가 듣기에도 별로거든요. 사라 브라이트만도 몇 번들으면 질리는 목소리인데... 폴 포츠는 그조차도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이 양반에 대한 대중의 환호는 그의 인생이 극적이어서 그런 거지... 실제 노래실력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얼마전에 폴 포츠를 두고 클래식 업자들과 연예가 업자들이 논쟁을 벌이는 걸 체널 돌리다가 한번 봤었습니다. 클래식 업자들은 만약 폴 포츠가 오페라 오디션에 왔었다면 바로 탈락인 수준의 실력이며, 그가 클래식을 대중에게 알렸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반면... 연예계 업자들은 늬들은 그러니까 귀족이라는 욕 쳐먹는거야라면서 우린 그래도 그가 좋아라고 맞받아치더군요.
전 잠깐 보다가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을 유명인의 대열로 만들어내고, 그게 또 대박을 치는 과정에서 작동되는 동력은 '정통파냐 짝퉁이냐'가 아니라 대중의 '욕망'이거든요. 한동안 '대체역사소설'이라는 것이 꽤나 많이 팔렸던 적이 있었죠. 이 책들의 설정들은 이제 갈데까지 간데다가 나올만큼 나온지라 더 나오진 않고 있지만 말이졉. 이거, 약소국 컴플렉스가 제국에 대한 로망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거거든요... 그러니 소설의 기본적인 문법은 '그 따위는 안 지켜도 상관없어' 취급을 받게 되는거구요.
현 정부는 자꾸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벌이는 일은 무조건 정당하다'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대중의 선택은 이전에도 그게 아니었고, 지금도 그게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만이 하늘을 찌른 사태가 바로 구속 결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습능력이 없는 조직들의 특징은 틀린 걸 반복해서 틀린다는 거죠. 누가 이 상태를 벗어나게 될지... 전 요거 하나만 궁금하답니다.